한줄 詩

저쪽 사원 - 함순례

마루안 2019. 9. 8. 18:53



저쪽 사원 - 함순례



산길은 무덤을 향하고 있다
산책길 찾아
이 길 저 길 더듬어보니 그렇다
가격(家格)에 따라 무덤의 위용과 무덤으로 가는 길이 달랐다
사람은 죽어서도 평등하지 않았다
나의 후생은 사람 두엇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숲길 하나 얻는 것일까
혼자는 외로우니 두런두런 말 섞으며 걸어가면
어떤 슬픔도 측백나무 향처럼 부드러워지겠다
잘 죽기 위해 오늘을 사는 것
하지만 저쪽 세상을 나는 모른다
발을 딛지 못하는 허방일까 황홀한 꽃밭일까
나는 저쪽 세상의 색깔을 모른다
양지바를까 짙푸른 미명일까 암흑천지일까
저쪽을 들여다보기에 이쪽은 너무 캄캄하다
그러니 저쪽은 가보지 않은 사원이다
은은한 경배의 자리다, 다만 때가 되면
울지 않고 돌아가는 것
그 길은 만날 수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 뿐이다



*시집, 혹시나, 삶창








추석 무렵 - 함순례



빗물이 홈통을 타고 세차게 흘러내린다
연일 비 소식
비도 어딘가 바삐 달려가는 것마 같다
비의 고향에도 양철 지붕과 돌담이 많을까
회색 기와가 고즈넉한 그런 마을인가
발걸음 타다닥 세우고 달려가는
비의 행방을 쫓아가면
처마 끝 빗소리 들으며
라디오 끼고 깔깔거렸던 풍경에 닿을 수 있을까
폭우에 잠긴 벼 포기와 씨름하던
아버지와 만날 수 있을까
적막이 내려앉은 이른 아침
빗방울이 굴러떨어지는
대추나무 이파리는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 내비치지 못한 채
꾸중 듣고 서 있는 아이처럼
엉거주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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