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백로 무렵에 - 성봉수

마루안 2019. 9. 7. 19:51

 

 

백로 무렵에 - 성봉수 


돌림병처럼 별안간 밀려온
산란(散亂)하지 못하는 흐린 날의 낙조
여름의 단호한 추락은
기다린 이의 황홀한 절망이지

가을이 왔다고 가슴을 열어
쓸쓸함 여민 사람들

문을 나서는 나를 막아서는
지지 않는 꽃과
당당하게 푸른 은행잎과
기꺼이 하늘을 비티고 선 모가지들과

발치 끝에서 머뭇거리는
백로 무렵의 어설픈 가을
답신 없는 연서에도 쓸쓸하지 않을 만큼
아직도 견딜 만한 일이다


*시집, 바람 그리기, 책과나무


 

 

 

 

고독(苦獨) 10 - 성봉수


별을 본다
억수 광년 전 나선 사내
새벽 장독대 물그릇에 이슬로 담겨
신기루처럼 잊고 섰더니
허상같이 낮을 태우고
빛 먼지도 남김없이 다 태우고
소주로 삿갓을 쓰고 앉아
별을 본다
온 곳도 갈 곳도 없는 끝.
사내는 없다

 

 

 


# 성봉수 시인은 1964년 충남 조치원 출생으로 1990년 <백수문학> 신인작품 당선으로 등단했고 1995년 한겨레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너의 끈>, <바람 그리기>가 있다.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창작 지원사업 작가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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