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신폭(神瀑)에 들다 - 우대식

마루안 2019. 9. 5. 22:06



신폭(神瀑)에 들다 - 우대식



윈난성 신폭 아래
객잔에 들었다
숯불을 피우고 당신이 오기를 기다렸다
쿵쿵 발자국 소리가 들렸지만 먼 당신은
가끔 눈사태만 엽서처럼 보냈을 뿐
흔적이 없다
떡을 떼어 객잔의 창으로 흐르는 눈발에 섞어 먹었다
반야의 밤에 달이 떠오르면
야크의 젖통은 부풀어
신의 나라에서 온 것 같은 울음소리를 냈다
아무것도 나를 지우거나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붉은 숯불이 잦아든다
국경 아래 뜬 달이 조금씩 기울면서
그 아래를 걷는 당신의 모습이 보인 듯도 했다
환상 속의 당신
그대 어깨가 붉어진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무명도 무명의 다함도 없다는 설산 국경에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당신을
기다리던 한 생(生)이 있다



*시집, 설산 국경, 중앙북스








마방(馬房) - 우대식 



차마고도로 가겠다
호수 곁으로 난 길, 멀고 먼 하늘에 걸린
쓸쓸하고 날이 선 낮달 하나
한번은 
차마고도를 걷는 마방으로 살겠다
수염에 고드름을 단 채
허공의 길을 걷겠다
야크 목에 달린 종소리처럼
하나의 파문이 되어
눈속을 헤치겠다
거대하고 깜깜한 산을 마주하고
지상에 불을 지펴
두 개 빛나는 눈동자로 경(經)을 읊겠다
나와 나 아닌 것들을 만나
화톳불에 붉은 손을 내밀고
잠을 청하겠다
끝도 없는 잠 속에서
뚝,
한 방울 눈물을 남긴 채
지상으로부터 
사라지겠다





*시인의 말


주막에서 보내는 날들이 저물어간다
가물가물한 해가 완전히 지고 나면
다른 지옥으로 방랑을 떠날 것이다
나 아닌 다른 神을 만나고 싶다
반갑고 슬프고 지랄 같은 눈발 속에서
볼온한 나의 생각을 용서받을 수 있나
용서받을 필요는 있나
용서하라, 용서하라, 용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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