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을 견디는 방식 - 이근일
아프고 난 뒤
찬밥만 먹는 사람이 있었다
죽음이 너무 차갑지 않게, 하고
그가 말했지만 나는 그것을
자학의 비만으로 이해했다
날마다 구덩이를 파는 개가
점점 골짜기를 닮아간다
혼백이 맘대로 드나드는 그 문을 떠올리는데
달고,
톡 쏘는 냄새 사이를 굴러다니는 양파가
끝내 제 침묵에 갇히고 만다.
속절없이 말라가는 시간에 대하여
허연 눈물 뚝뚝 흘리던 빨래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저녁의 줄에서
나울나울 춤을 추는 사이
방금 입에 문 씀바귀무침이
내 혀를 잡아당기며
쉬이 놓아주지 않는다.
독하게,
또 향기롭게
*시집, 아무의 그늘, 천년의시작
해 질 무렵 - 이근일
버찌가 흘린
검은 피로 낭자한 출근길
그녀는 떠올리는 것이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려다
갑자기 길을 잊은 사람, 그렇게
기억을 쏟아낸 사람이
빠져버린 검은 허방에 대하여
벌써 몇 년째 요양원 신세를 지면서도
그 사람은 해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짐을 꾸리고 문 앞에서 실랑이를 벌인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 사람 곁엔
늘 그날의 시간이 머무르는 것일까
오늘도 병실 유리창에 석양이 걸리자
그녀는 단호한 얼굴로
문 앞을 지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그날이 있듯, 그녀는 석양을 지우고
오래된 핏자국 같은
그 사람의 그날을 지우고 싶다.
*시인의 말
오래도록 내 통증을 어루만지던 손길을 기억한다. 그처럼 어느 바닥에 서린 햇빛의 그 차가운 표정은 쉬 잊을 수가 없다.
잊지 않으려고, 혹은 잘 잊으려고 오늘도 무언가를 쓴다. 빛과 그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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