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동전 앞면은 선택이 아니었다 - 서화성

마루안 2019. 9. 1. 16:27

 

 

동전 앞면은 선택이 아니었다 - 서화성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당신이 알고 있었던 고백을 말하는 것처럼

그래, 그쪽으로 올라가면 된다는 말

그 말을 동아줄처럼 부여잡고 하늘길로 올라갔다

주소는 없었다

발자국은 없었다

그냥 풍차가 돌고 있다는 그 말

그것이 빗나간 약속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갈림길이 있었고 다른 선택이 악연이었다

하나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

죽은 자들이 깨어나 죽은 듯이 속삭이고 있었다

이미 엎질러진 선택이다

어둠이 엄습해오는 해거름

끝이 보이는 길목에서 길은 없었다

지푸라기는 없었다

천국의 계단은 없었다

낭떠러지 따라 등살에 밀리듯 떨어지듯 올라갔으며

쉽게 끝날 줄 모르는 것이 선택이었다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메아리가 들렸다

십년살이가 금방이다

돌부처처럼 발자국은 굳어 있었고

박씨를 물은 까치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고

가끔은 이 말을 즐길 때가 있었다

 

 

*시집/ 언제나 타인처럼/ 시와사상사

 

 

 

 

 

 

손수레 - 서화성

 

 

어디서부터 어둠을 끌고 왔는지 모르겠다

가장 낮은 자세에서 사물과 함께 바라본다는 것

산언저리에 걸린 해는 쉽게 넘을 생각이 없었다

한때는 시침보다 느리게 늙고 싶었는데

철부지 그 꿈은 어제 꾸었던 꿈이 되어 버렸다

타인이라는 대신 타인처럼 말이 어울린다는 것은

가을걷이를 끝낸 허수아비에서

처진 어깨는 노을처럼 타들어 있었다

남은 뼈에 무게를 지탱하는 삶은

무겁게 한숨을 들이마시며 한 발짝 걸어갔다

전봇대를 피해서

달동네 어귀에서 어둠을 끌고 있었다

어깨통증이 계절마다 다르게 변해 가는데

한 달째 일요일이면

속옷마저 허름해진 잠바에 키보다 긴 노을을 끌고

땡볕이 머물다 사라진 길을 비 오듯 끌고 있었다

하루란 아마도 수술대에 오르는 기분이었다며

등지고 간 세월에서 나이를 잊었지만

손자 녀석 하나쯤 군대에 있을 법한 그런 날이었다

 

 

 

 

# 서화성 시인은 경남 고성 출생으로 2001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아버지를 닮았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