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가 어떻게 네게 왔다 가는가 - 황학주

마루안 2019. 8. 31. 21:59



내가 어떻게 네게 왔다 가는가 - 황학주



비는 때마침 잘 오는 거 같아
잎사귀 안에서 연하게 바깥으로
빗소리들이
내 앞으로 몰려든다


함께 오는 것으로는 이명,
그 항로 없는 새들도 지저귀는 것으로는 얼마나 빡세겠어 아름답겠어


오늘도 제주도세요, 너는 묻지만
늦도록 책상다리를 하는 내 직업은
이삿짐 박스만한 말을 고층에서 조용히 내리는 것


그 길에 데리고 나온 인생은
지금 생각하니 그럴싸하고 찬란한 감정이었다
빗방울, 세간엔 우리가 밤봇짐으로 가장 어울린다는 말도 있는걸


하루에 빗소리 한 줄을 받아쓰며 파이는
찬 오늘밤
내일 밤
너는 무얼 할까
내 나이쯤 되면 무얼 하고 있을까
어느 날 손등에 떨어진 촉농 머금은 입맞춤부터
파인 곳에 들어갔다 나올 수 없는 눈물까지를  애써 살고
큰 나무도 없어 눈 둘 데 없는 막연한 해변을 구르며


어느 빗방울에 하냥 빠진
밤의 바퀴처럼 떨어진 어처구니처럼


내가 어떻게 어린 네게 왔다 가는가 어떻게
이명 안에 일생 흔들린 짐수레 하나를 세워두고
그만 늦겠다고 하는가


먼저 자고 가는
이것을 춘몽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시집, 사랑은 살려달라고 하는 일 아니겠나, 문학동네








푸른 밤바다 - 황학주



당신의 베갯머리에 앉아
며칠째 숟가락 놓은 곧은 손을
쥐어본다


안녕, 이란 알고 보면
막말 같은 허구렁에서 헐거워진 손목 같은 데를 빼는 것
마음이 먼저 길을 떠나고 외로움이 남아 연줄 끊는 거 겪어보지 않은 것처럼 말하면 뭐해


늦은 시간에 어딘가를 가려는 당신
슬픔을 빼앗기지 않는 내 마음


내가 없을 때 뭐 하는지 궁금하기만 할
덧대어진 눈, 먼 울먹임 같은
젖국 빛 시야 속에
마른 시래기 옆에


흙먼지 날아가고 남은
묵은 얼굴 반달 이마


누군가를 향해 문드러진
그래서 누군가를 가리킬 수 없는 미워할 수 없는
동그만 손에
곧 쥐여주려는 듯
푸른 밤바다
닿을 듯 닿을 듯


끝까지
과연 누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나
밤바다에 둥근 달 뜨는 일이란
잠옷 벗기듯 한 말을 들추는 일인데
내 거짓말을 다 알고 있는 아픈 손마디를 당신은 어디에 두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