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 표정훈

마루안 2019. 9. 1. 10:46

 

 

 

흔히 생긴 대로 논다는 말이 있다. 이 책의 저자가 그렇다. 유유상종이라고 나같은 염세주의자는 끼리끼리 논다. 그렇다고 헤프게 나를 노출시키지 않는다. 창녀 주제에 지조 있는 척 한다고 할까. 나는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는 창녀 같은 활자 소비자다.

내 맘대로 결론이다. 이 책은 표지부터 인상적이다. 내가 자다가도 일어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빨려 들어가듯 책을 집었다. 이 책이 나를 선택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호텔 로비에서 애인을 기다리며 책을 읽는 것 같지만 이 그림은 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8년에 그려졌다.

미국 뉴욕에서 버먼트주 벌린텅 행 열차 안에서 잡지를 읽고 있다. 저자는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이 여인의 심리 상태와 읽고 있는 잡지 이름과 내력까지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저자 표정훈의 오랜 취미는 그림에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하는 거였다.

이 책은 보는 그림을 읽게 해준다. 딱히 그림에 대해 조예가 없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적당히 교양이 밴 저자의 글솜씨 덕분에 아주 재밌게 읽힌다. 단숨에 읽은 후에 미련이 남으면 한 꼭지씩 골라 읽어도 좋다. 유명한 그림보다 의미 있는 그림을 설명했다.

이 책을 보면 읽을거리를 배경으로 그려진 그림도 꽤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저자가 소개하는 그림은 책을 읽고 있거나 들고 있거나 쓰고 있거나다. 저자는 탐서주의자다. 자신이 알고 있고 담고 있는 내용을 독자에게 설명하는 것도 일종의 기술이다.

그것을 말로 잘 할 수 있는 사람과 글로 잘 할 수 있는 차이가 있을 텐데 저자는 글로 하는 설명이 어울린다. 미술책이 무조건 두껍고 화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려준다. 그림보다 그 안을 들여다 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책값도 적당히 착하고 작은 판형이 마음에 든다. <카를 수피츠베크>의 그림 <책벌레>를 설명하는 장에서 저자는 책 읽기의 고통과 행복에 대해 말한다. 딱 내 마음이다. 머리맡에 두고 이따금 한 꼭지씩 읽어도 좋겠다. 혼자 남은 밤에 더욱 어울리는 당신 곁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