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하루를 더 살기로 했다 - 이수호

마루안 2019. 8. 23. 23:05

 

 

 

이 책은 평균적인 책 크기에 비해 다소 작고 무게도 가볍다. 그러나 내용은 아주 묵직하고 울림이 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썼다.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는 에세이다. 일기장 형식의 이런저런 소소한 일상도 있고 울분에 젖은 詩도 있다.

책을 읽으면 당신의 이력서가 그대로 나온다. 전태일과 같은 해인 1948년에 태어나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원래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국문과 야간과정을 마치고 중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전교조 활동으로 학교에서 해직되고 감옥에도 갔다. 그의 이력에 전교조 위원장과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는 직함이 붙는다. 수배를 당해 숨어 살기도 했고 감옥에서 무상 급식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열정은 끝이 없었다. 모두 이 책에서 얻은 정보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이런 은사 하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웠다. 좋은 스승 밑에서 좋은 제자들이 나온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까까머리 학생들이 고교 졸업 30주년 행사에 초청을 한다. 그들에게 이수호 선생은 참 교육을 준 든든한 스승이었다.

어느덧 중년에 접어든 제자들 몇이 모처럼 은사의 식사 대접을 위해 모인다. 늘 검소한 선생에게 비싼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제자와 저렴한 음식을 먹겠다는 스승의 실랑이가 아름답다. 결국 머리 좋은(?) 제자의 중재로 중간 가격대의 메뉴로 결정을 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딱 한 번뿐이다. 동등하지 않은 조건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꼭 개천에서 용이 나와야 하나. 모두 용이 될 수는 없다. 개천이 없으면 또 어떤가. 자신을 희생해서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사회, 선생의 신조이자 가르침이다.

문득 중학교 때 역사 선생님이 생각난다. 국화를 좋아해서 가을이면 교무실 창가에 줄줄이 늘어선 국화 화분에 물을 주셨다. 열정적인 수업 시간에는 어찌나 재밌는지 조는 아이가 없었다. 반공 시절 권위적이고 무섭게 굴던 대부분의 선생님과는 달랐다.

때론 개구쟁이처럼 장난스러워서 학생과 선생 관계가 아닌 친구처럼 느껴졌다. 촌지가 성행하고 선생이 노골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던 시절이었다. 질 나쁜 선생을 여럿 경혐했다. 역사 선생님은 따끔한 경고는 했어도 그런 차별과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훗날 친구들에게 물어 보니 대부문 존경하는 스승으로 그 역사 선생님을 꼽았다. 얼마전에 전화로 안부 인사를 드릴 때 사모님께서 그랬다. 비교적 건강한 편인데 귀가 잘 안 들린다고,, 이 책에서 이수호 선생도 귀가 잘 안들린다는 대목에 스승을 떠올렸다.

선생은 자신을 미화하기보다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며 겸손해 한다. <나이 헛먹었다는 말 이래서 생겼구나. 나이 많아지면 참을성은 약해지고 고집은 더 세지고 눈치마저 떨어지는데, 그걸 늘 염두에 두고 끊임없이 자기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곤 해야 하는데, 내가 바로 어물전 꼴뚜기였구나. 이게 바로 꼰대로구나>, 이렇게 자책한다. 어떤 삶이 아름다운가를 알려주는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