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 정영목

마루안 2019. 8. 19. 19:59

 

 

 

예전에 어떤 외국 영화에서 본 장면이다. 글을 모르는 사람이 멀리 돈벌러 떠난 남편에게 온 편지를 받았다. 문맹자의 부탁을 받은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고 편지 내용을 엉뚱하게 말하는 장면을 보며 관객들은 웃었다. 나도 씁쓸하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번역가 정영목의 에세이다. 그동안 자신이 번역한 책들을 돌아보며 기억에 남은 작가들의 작품을 회상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가 오래전에 본 영화가 떠오른 것은 외국어로 된 작품이 번역가의 손을 거치면서 혹 왜곡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독자도 원서를 접할 수 있는 이 개명한 세상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외국 작가의 의도를 번역이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동안 정영목 선생이 번역한 책은 몇 권 읽지 못했다. 내가 워낙 소설을 잘 안 읽는 편이어서다.

번역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책을 읽을 때 번역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책이 믿을 만한가는 어떤 출판사인지가 먼저였다. 내가 읽은 정영목의 책도 주제 사라마구와 필립 로스 정도일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도 두 작가는 언급하고 있다.

번역가도 우리 글로 옮기고 싶은 작가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밥벌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사라마구와 이창래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인상 깊었다. 서점에 가면 정체 불명의 외국 책들이 무수히 진열된 것을 보며 이런 책은 누가 읽을까 생각을 한다.

호기심에 들춰보지만 저자도 번역가도 신뢰감이 생기지 않는 책이 부지기수다. 우리의 출판계가 불황이라지만 독자들이 참 많이 있다는 걸 실감한다. 진열된 책 중에 읽고 싶은 책보다 별로 내키지 않은 책이 훨씬 많은 걸 보면 나는 아직 멀었다.

정영목은 그냥 외국어를 잘하는 번역가가 아닌 인문학적 소양을 제대로 갖춘 번역가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다양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소설가 이문구의 토속적인 작품을 진지하게 언급하는데 그가 번역한 책이 잘 읽히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한국인이 아니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이문구 작품을 외국어로 옮기는 어려움을 고만하듯 외국어를 한글로 번역할 때 이문구를 이용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번역이 독해가 아닌 또 하나의 창작임을 실감한다.

그래서 번역가는 외국어 실력도 중요하지만 우리 글의 이해가 훨씬 중요하다. 어쩌면 우리 문학이 외국에서 푸대접 받고 있는 것도 외국어 실력자는 많으나 우리 말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어의 조합으로 문장이 되지만 단어와 문장은 다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외국어를 한글로 옮기기보다 한글을 외국어로 옮기는 것이 훨씬 어려움도 알게 된다. 물론 정영목 선생은 영문을 한국어로 옮기는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번역의 어려움과 번역가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