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탑골 공원 - 권상진

마루안 2019. 8. 29. 21:50



탑골 공원 - 권상진



기다림이란 저런 것이다


질주하듯
생을 내달려 낡아 버린 몸이
마흔 즈음 놓쳐버린 청춘
늙어 돌아올 때까지
종일, 말없이 공원 벤치에서
살아온 방향을 바라보는 일


매일 옆에 앉던 이가 며칠째 오지 않는다
한참을 오지 않는 이유는
결국 영영 돌아오지 못할 까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기다림이 슬픔을 대하는 방식은
허겁지겁 공원을 지나쳐 가는
타인의 영혼마저도 조용히 환대해 주는 것


우화의 찰나를 지나고 있는지
정지된 자세만 허물처럼 벗어놓고
사는 일도 그렇지 않은 일도
모두 기다림이라는 듯
잠시 집을 다니러 가고 없는 공원의 저녁


깜박 놓고 간 지팡이 하나가
밤새 또 그들을 기다리는



*시집, 눈물 이후, 시산맥사








눈물 이후 - 권상진



빗물은 세상의 어디가 슬픔에 눌려
낮게 가라앉아 있는지 안다
익숙하게 지상의 공허를 찾아 메우는
한줄기 비


마음도 더러 수평을 잃는다
날마다 다른 각도를 가지는 삶의 기울기에
가끔 빗물 아닌 것이 가서 고인다
얼마나 단단히 슬픔을 여몄으면
방울방울 매듭의 흔적을 지녔을까


가늠할 수 없던 슬픔의 양
그 자리에 울컥 눈물이 고이고 나서야
참았던 슬픔의 눈금을 읽을 수 있다
허하던 마음에 고여 든 평형수
기울어진 어제의 날들은
눈물 이후에야 비로소 균형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