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야구장으로 입장하시라 - 김요아킴

마루안 2019. 8. 28. 21:59



야구장으로 입장하시라 - 김요아킴



마음이 시대를 붙잡지 못할 때
야구장 외야석 한켠으로 가 보라


둘이 아닌 혼자, 어린 시절
소풍 때나 먹어 봤을 김밥 두 줄과
한 병의 탄산수를 짊어지고
전광판 옆 구석진 곳에 앉아 보라


추억의 색깔로 채색된 그라운드 위
공수가 평등하게 분배되는 게임의 논리를
하나 둘 켜져 오는 조명등처럼
마음껏 속으로 분양해 보라


반드시 한 쪽 귀에는
한 쪽 목소리만 내는 아나운서의 수다를 꽂고
사방을 눈치 보며 늘 견뎌내야 할 고단함을
잠시나마 망각해 보라


평소 금방이라도 입술에서 허락될 숫자만큼
엎치락 뒤치락 플레이를 펼치는
그 곳의 함성은 생의 영원한 소도(蘇塗)
치어리더의 주술적인 춤동작은 덤으로 생각하라


마음이 가끔씩 시대를 따라가지 못할 땐
야구장으로 한번 입장권을 내밀어 보라



*시집, 왼손잡이 투수, 황금알








3루수 - 김요아킴



한 차례의 바람이 지표면을 쓸고 간 자리
생의 장애물들은 몇 개의 잔돌로 드러났다


울퉁불퉁 언제 튀어 오를지 모르는 긴장은
깊은 호흡으로 바운드 처리되고


홈에서 보이는 제일 가장자리


양 발을 더 벌리며 겸손한 자세로
순간 날아들지 모르는 타구를 응시해야
배트 중심에 맞혀진 불편한 진실을
캐낼 수 있다


제자리에 서서도 끊임없이
스파이크에 걸리는 불규칙한 관습을
잘게 부수며 평평히 골라야
더욱 환한 세상을 볼 수 있다


가장 낮은 마음으로
결국 제 발밑의 복병을 비춰 봐야하는
불혹의 핫코너,
그 수비수가 지켜야 할 율법 하나
조고각하(照顧脚下)






# 여름은 야구의 계절이다. 밥 만큼 좋아하는 야구이지만 경기장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흔히 야구를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왼손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에 수비 팀의 위치가 달라질 정도로 과학적인 스포츠이기도 하다. 세밀한 규칙을 알고 보면 더 재밌는 것, 야구 하기에도 구경하기에도 딱 좋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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