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바다 악장 - 성윤석

마루안 2019. 8. 27. 19:28



바다 악장 - 성윤석



바다 곁에 살면 푸른빛을 얻는가. 어깨에 용 문신을 한 짐꾼
사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온다. 저 사내 생선궤짝을 자꾸만
엉뚱한 소매가게에
부려놓은 날은 여자가 죽은 날이었지.
어떤 생애가 장어 골목 사이로 사라지고 해무가 뒤따라갈 때
바다는 머리를 풀어 눈 시리도록 시퍼런 파래 더미를
해안에 쌓고 구름이며 창문이며 바다에 나앉은 낡은 의자며
그런 것들을 붙잡고 바다 사람들은
멸치면 멸치를, 고등어면 고등어 좌판을 내놓는구나.


음악을 건드려도 가라앉지 않는 상실감으로
떠난 후 다시 돌아온 짐꾼들이 얼어 죽은 생선들의 벌린 입을 다 모아,
바다의 비명을 들어보려 헤드셋을 낀 채
바다가 만든 방에서 일하고
바다가 꾸려준 침대에서 잠이 들 때
바다에 다시 돌아오면 푸른빛을 얻는가.


새벽 푸른 입술을 가진 사내들이 고단한 아내들을 재촉하고
출렁거리는 가슴과 고무대야에 바다에게서 얻어 온 바닷물을 들이붓는 시간에
종이 생선상자를 함부로 뜯다가
죽은 생선들의 칼 같은 가시와 이빨에 찔리는 바다 밖 사람들


바다를 떠나지 않으면 바다보다 더 푸른 빛을 얻는가.
바다 재두루미 한 마리 물결 스티로폼 위에 외다리로 서
제 머리와 부리를 제 옆구리에 묻고 잠이 들 때
혼자서 돌아오는
한 인간의 영혼이여 당신도
바다를 만나면 바다보다 더한 바다를 얻는가.


그때 물결
있는 대로의 제 높이를 다 드러내고 우는 바다



*시집, 멍게, 문학과지성








고등어 - 성윤석



마산 선창이다.
부둣가 방파제에 아침부터 술에 전 사내가 간고등어처럼 누워 있다.
태평양의 끝에서 배를 열고 한여름의 사내는 그늘도 없이 널브러졌다.
여자는 수시로 도리질을 하고 사내를 확인하며, 조개를 깐다.
대합 살들은 아침 해의 살점처럼 고무대야에 떨어지고
발로 차도 박살 날 것만 같은 생의 가게들.
月明期라 했나, 달도 너무 밝으면 고등어들은 흩어지고
수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했다.
고기가 없어. 맞은편의 여자는 냉동된
고등어 내장을 파내며,
조개 까는 여자를 쳐다보고, 조개가
잠시 고등어 내장들을 쳐다볼 때
조개 까는 여자의 손마디 상처도 환해질까.


고등어들은 갈비가 되어 저녁 술집으로
갈 테지만,
겨우 일어선 사내는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뱃전에서 방파제로 튕겨져 나온 고등어처럼
어리둥절 다시 바다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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