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목어 - 안성덕

마루안 2019. 8. 27. 19:41



목어 - 안성덕



감을수록 더 아른거리는 법
닿을 듯 닿을 듯 손닿지 않는 등 뒤가 더욱, 안타까운 법


잎 가버린 뒤 번쩍 피는 일주문 밖 상사화
감았던 눈 다시 뜨는 것이다 그만 잊자, 부릅뜨는 것이다


떨군 고개 들어 목젖에 걸린 낮달을 삼키는
돌탑 뒤 저 사미니
눈물을 감추는 게 아니다 어룽어룽 자꾸만 따라붙는 그림자
산문 밖으로 밀어내는 거다


눈 감으면 다시 또렷해
위봉사 목어는 스스로 제 눈꺼풀 잘라버렸다



*시집, 달달한 쓴맛, 모악








꽃잠 - 인성덕



항구에 무적(霧笛)이 운다


사락사락, 가위에 잘린 생각은 이어붙일 수 없다 아스라이 멀어지는 뱃고동 소리


등대이발관 낡은 의자에 누워 안개의 휘장을 헤친다 소라 귀를 하고 옛 소녀의 안부인 듯 파도소리를 모은다


입안 가득 고여 있던 물비린내 온몸을 휘감는다 저, 저 막배를 타야,,,,,


잠꼬대처럼 소녀가 우물거린다 이따금 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간다 주전자 뚜껑이 풀썩거린다 나는 나를 깨울 수 없다


서울여인숙 형광등불이 반토막이었기 때문일까? 시절도 반만 유효하다


부서지는 포말, 벼린 면도날에서 푸른 피가 번진다 어렴풋이 어깨를 흔드는 무적


불 꺼진 등대, 여전히 나는 이 항구의 출구가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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