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보름달이 걸리다 - 서화성

마루안 2019. 8. 8. 22:30

 

 

보름달이 걸리다 - 서화성

 

 

고향이 같은 사람은 피를 모으면 같은 쪽으로 쏠린다고 했다

내 고향은 지금도 그때 매미가 울고 있을 것이며

하늘에 매단 붉은 사과처럼 심장은 뜨거울 것이며 탱탱한 보름달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어느새 하얀 쌀밥이 달그락 달그락 익어가는 저녁,

끼니를 잊은 채 옆집 숙이는 하늘을 이고 해가 떨어지는 줄 몰랐다

돛을 단 고무신은 어디로 떠갔는지 몰랐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웠다는 이야기에서 어제보다 목이 길어진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웃음소리가 추억을 사각사각 갉아 먹고 있었다

 

양치기소년 때문에, 저 멀리 은하수를 놓자 한 폭의 수채화가 되었다

순간, 별똥별이 떨어지는 내 고향에서 사라졌다

매캐한 모깃불 탓에 삼삼오오  하늘을 덮은 아이들

휭하니 페가수스 한 쌍이 날아간다

논두렁에서 자작자작 벼 익어가는 소리에

간혹, 완행버스가 덧칠하며 지나갔다

 

당신은 그저 당신인 줄 알았다

당신이 꽃인 줄 몰랐다

당신이 엄마인 줄 몰랐다

 

 

*시집/ 언제나 타인처럼/ 시와사상사

 

 

 

 

 

 

본전삼계탕 - 서화성

 

 

괘종 소리마저 닳아 너덜해진 그런 날이었다

목이 쉴 때까지 울어대던 저 놈이 뭔지

꿈자리가 뒤숭숭했는지 늘어졌던 그날,

밀린 달세처럼 좀체 걸리지 않던 감기를

때마침 홍역보다도 마마보다 더한 그날,

그런 나를 도살장에 끌고 가듯 갔다

해를 넘기고 진눈깨비가 내릴 시간인데

대기표 15번을 받고 밤이슬처럼 사라졌다

감기에는 은행만하는 것이 없다는 속설에

부적보다 더한 그런 말을 맹신했으리라

한 알 두 알 한 첩이 될 때까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 속을 비웠으리라

그런 그날,

진물이 나도록 가렵고 푹푹 찌는 그날,

십년 같은 골방에서 어떻게 그 밤을 참아냈을까

이제 겨우 그 나이에 접어든 오늘밤,

지금처럼 목이 갑갑해 올 때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서일까

그날 밤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이유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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