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운명이다 - 노무현 자서전

마루안 2019. 8. 3. 22:05

 

 

 

예전에 읽었던 책인데 다시 읽었다. 노무현 10주기에 맞춰 나온 전집을 전부 읽었으나 역시 이 책이 제일 감동적이다. 읽어야 할 책들이 밀려 있는 마당에 읽은 책을 다시 읽기가 쉽지 않다. 책이든 영화든 많이 보기보다 좋은 작품을 두 번 읽는 게 낫다.

어머니 돌아 가셨을 때도 울지 않았던 내가 노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는 펑펑 울었다. 지금은 안정이 되었지만 당시는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이 오랜 기간 떠나지 않았다. 노사모처럼 열성 지지자는 아니었어도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가는 날짜를 딱 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가끔 봉하 마을에 간다. 묘역을 한 바퀴 돌고 봉화산에 올라가 들판을 내려다 보면 정말 아까운 사람 잃었다는 짠한 감정이 울컥 올라온다. 슬픔은 이미 정리 되었지만 한없이 아쉬운 마음은 여전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파란만장이 이렇게 절실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생생하게 느낀다. 소설보다 더한 곡절과 부침이 파노라마처럼 한 사람의 일생을 관통하고 있다. 마지막 구절을 읽고 나면 운명이란 정해진 것이란 걸 믿게 된다.

흔히 운명은 개척하기 나름이고 장애물 또한 극복하기 나름이라고 한다. 젊었을 때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었으나 중년에 접어들면서 정해진 운명 쪽으로 무게가 간다. 어미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내 운명은 정해진 대로 흘러온 것이 아닐까 하는,,,,

책 제목처럼 노무현은 운명대로 살았을까.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돈이 없어 상업고등학교를 끝으로 대학 진학을 못한다. 잠깐의 방황을 접고 고시 공부에 매달린 끝에 사법 시험에 합격한다. 합격자 중 유일한 고졸 출신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흑수저의 성공 사례라고 할까. 노무현의 일생에는 한국현대사가 모두 들어 있다. 한 사람의 신념이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을까. 평소에 마음씀이 넓으면 위기 때마다 도우미가 나타난다. 노 대통령의 일생이 그렇다.

고교 동창 원창희, 정치 후원자 강금원, 어려울 때 함께 했던 유시민 등,  이름뿐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일상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딱 맞다. 반면 이익을 쫓아 이리저리 옮겨 다닌 사람들도 있다.

노무현의 삶이 아름다운 건 이해 타산에 따라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정치 인생이 낙선의 연속이었던 것도 이리저리 흽쓸리지 않고 신념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늘 언론에 시달렸던 것 또한 불리할 때 빠져나갈 궁리를 하면서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미화할 필요는 없다. 그의 죽음으로 나는 또 하나의 존경하는 인물을 가슴에 담았다. 세종대왕, 이순신, 전봉준 등도 존경하지만 그들은 내가 직접 보지 못한 인물들이다. 자서전을 읽은 뒤가 미안하고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