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70세 사망법안, 가결 - 가키야 미우

마루안 2019. 8. 16. 17:54

 

 

 

웬만해서 소설을 읽지 않는 내가 호기심이 가는 독특한 제목 때문에 아주 진지하게 읽었다. 이 소설은 빼어난 문학적 문장보다는 내용에 있다. 메시지가 너무 현실적이어서 공감이 간다. 그렇다고 세태를 신랄하게 꼬집는 사회성이 짙은 것도 아니다.

노령화가 심각한 일본이다. 모든 사람은 70세가 되면 죽어야 하는 법이 통과 되어 2년 후에 실행된다. 그러니까 현재 68세인 사람도 88세인 사람도 남은 생애는 2년뿐이다. 신문이고 TV이고 이 법의 실행을 두고 찬반 논란이 한창이다.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 빼고 대부분의 노인들은 반대다. 반면 대다수 젊은이는 찬성이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극명하게 입장이 갈린다. 당연하다. 어서 죽어야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노인네를 3대 거짓말쟁이라 하지 않던가.

이 소설에 한 가족이 있다. 줄거리를 끌고 간다고 할 수 있는 주인공 격인 도요코는 55세의 전업 주부다. 가족들 보살피면서 84세의 시어머니 시중으로 하루가 부족하다. 남편 지즈오는 평생 회사 일에만 신경 쓰느라 가족에는 소홀하다.

남편도 58세이기에 죽기까지는 딱 12년이 남았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하겠다면서 어느 날 명퇴를 하고 해외여행을 떠난다. 딸인 모모카는 30세로 독립해서 따로 살면서 요양병원에서 일한다. 아들 마사키는 29세다. 명문대학 졸업하고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에 취업했으나 인간 관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 후 은둔형 외토리로 지낸다.

골절상을 입은 후에 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는 시어머니는 수시로 벨을 눌러 며느리를 부른다. 괴퍅한 성격의 시어머니는 대소변을 받아내는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도요코는 이런 시어머니 시중에다 아들이 방에서 종일 처박혀 나오질 않으니 매일 두 끼의 식사를 준비해 아들 방문 앞에 놓는다. 도요코는 지겨운 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

소설은 인물 시점이 고정되지 않고 전개되는 상황에 따라 1인층으로 전개된다. 엄마 시점에서는 시어머니, 남편, 아들이지만 아들 시점으로 전개될 때는 할머니, 엄마, 누나가 된다. 소설은 변하는 시점에 따라 한 가지씩 사건이 벌어지면서 흥미롭게 전개된다.

모진 마음을 먹고 엄마가 집을 나가면서 가족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밤이 늦도록 2층으로 엄마가 배달하는(?) 음식이 오지 않자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아들이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상황이 시작된다. 할머니는 벨소리를 들으면 바로 달려오던 며느리 대신 손자를 보자 눈살을 찌푸린다.

어쩔 수 없이 손자의 도움으로 귀저귀를 갈고 원하는 음식을 갖다 바치던 며느리 음식 대신 식은 햄버거를 손자와 억지로 먹는다. 아내의 가출로 급기야 3개월 일정으로 세계 여행을 떠난 아버지도 며칠 만에 돌아와야 했다.

오랜 만에 누나에게도 전화를 한다. 큰고모도 억지로 와서 친정 엄마의 병수발을 하루 하고는 그동안 군말 없이 수발을 했던 올케의 노고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방으로 들어가 외톨이가 되었던 아들도 할머니로 인해 조금씩 변한다.

70세 사망법안 실행 시기는 다가오고 정상 같으면서 안으로는 비정상이던 이 가족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오래 사는 것이 재앙이 될 수 있는 노인 문제에서부터 해체된 가족의 화해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단 한 줄로 정의할 수 있으면서 수천 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