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간에 기별하다 - 김연종

마루안 2019. 7. 26. 22:51



간에 기별하다 - 김연종



벼룩시장의 정보를 취합하여
네 징후를 포착한다
몸속의 소식들은
언제나 한발 늦기 마련이다
진검승부를 펼치기도 전에
몸을 꺾어버리는 너의 비겁함을
술잔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단기기억은 해마가 관장하고
장기기억은 대뇌피질이 저장한다지만
술 취한 너에 관한 기억이라면
씁쓸한 입술과 어리석은 간뿐이다
인생에서 승부란 늘 뻔한 이치다
목소리 센 놈이 일견 유리해 보이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취하게 하는 자가
해마 속에 파고들고
누군가와 마음을 섞는 자만이
대뇌피질에 자리 잡는 것이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도
누구와도 마음 섞지 못하고
세상을 향해 헛구역질만 해대는
멍청한 간이여,


내 술이나 한 잔 받아라



*시집,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 지혜








파경(破鏡) - 김연종



경로를 이탈한 액정 화면에
갈 길 바쁜 生의 주파수들이 바람처럼 몰려들고
잘못 입력된 주소창에서
두 쪽 난 하늘은 오히려 경건하다
깨진 거울 속 하늘을 들여다본다
팔다리가 잘리고
가슴팍이 멍들고
머리통이 박살 난 채
아직도 성장통을 앓고 있는 중년의 사내가 거기 서 있다
정밀한 이분법의 북채로 내리쳐도
정확히 두 동강 난 파편은 존재하지 않을 터이다
더 이상 짜 맞출 수 없이 산산조각이 나고 나서야
내 삶은
퍼즐처럼 완성될 것이다
싱거운 눈물 한 방울에
소금 인형처럼 사라져버릴
저 처참한 몰골을 꺼내
온전한 햇빛의 거울에 말릴 수만 있다면


모든 신음은
내게로 와서 멈추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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