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의 잠 - 조성국
쌀자루나 고구마차대가 쌓여있기 일쑤여서
발을 쭈욱 뻗을 데라곤 없는 초가 방에 열두 식구가
누우려면 서로 엇갈려 눕는 게 상수다
몸에 둘러붙은 살갗인 듯
퍽이나 금슬 좋은 어버이도
반대편으로 누워 잠드셨다 막둥이까지 다 커 솔가한 지금도
아버지가 머리를 북쪽으로 내려놓고 잠이 드신다
내 생애보다도 훨씬 오래인
이 가긍한 잠을 드셔야만 편안해 하신다
*시집, 둥근 진동, 애지출판
섬광 - 조성국
곧 밤이 온다는 것을 안 것일까
해동갑해서쯤이면
붉고 고요한 수면 위로 박차고 솟구쳐 올라
이우는 해의 잔광을
제 몸에 묻혀 바르듯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는 건
켜켜이 조여드는 어둠에 묻혀
어디로 뻗어 있는 지조차 가름할 길이 없는
거센 물살을
거슬러야할 고기떼가
등뼈 휘어지게 감전된 듯
배릿하고 파닥거리는 은빛 한순간이 스친다는 건
곧 어두워져
길이 닫힌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일까
# 조성국 시인은 1963년 광주 출생으로 1990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슬그머니>, <둥근 진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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