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어버이의 잠 - 조성국

마루안 2019. 7. 23. 23:18



어버이의 잠 - 조성국



쌀자루나 고구마차대가 쌓여있기 일쑤여서

발을 쭈욱 뻗을 데라곤 없는 초가 방에 열두 식구가

누우려면 서로 엇갈려 눕는 게 상수다

몸에 둘러붙은 살갗인 듯

퍽이나 금슬 좋은 어버이도

반대편으로 누워 잠드셨다 막둥이까지 다 커 솔가한 지금도

아버지가 머리를 북쪽으로 내려놓고 잠이 드신다

내 생애보다도 훨씬 오래인

이 가긍한 잠을 드셔야만 편안해 하신다



*시집, 둥근 진동, 애지출판








섬광 - 조성국



곧 밤이 온다는 것을 안 것일까


해동갑해서쯤이면

붉고 고요한 수면 위로 박차고 솟구쳐 올라

이우는 해의 잔광을

제 몸에 묻혀 바르듯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는 건


켜켜이 조여드는 어둠에 묻혀

어디로 뻗어 있는 지조차 가름할 길이 없는

거센 물살을

거슬러야할 고기떼가

등뼈 휘어지게 감전된 듯

배릿하고 파닥거리는 은빛 한순간이 스친다는 건


곧 어두워져

길이 닫힌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일까






# 조성국 시인은 1963년 광주 출생으로 1990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슬그머니>, <둥근 진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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