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정태춘 데뷰 40주년이란다. 정확히는 41주년이나 10년 전에 아내 박은옥의 데뷰 30주년을 기리면서 그만 그렇게 굳어졌단다. 40주년이든 41주년이든 가수에게는 소중한 기념이다. 요즘 나오는 가수 중에 과연 20주년인들 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80년대 중반, 뭣도 모르고 겉멋만 잔뜩 들어 싸돌아다닐 때 정태춘을 아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풍물하는 친구였는데 늘 계랑 한복을 입고 다녔다. 일산이 신도시가 되기 전 백마역 부근은 자주 가던 곳이었다.
신촌역에서 교외선을 타고 백마역에 내리면 황량한 내 청춘에 화색이 돌았다. 그곳에서 친구와 듣던 청태춘의 노래 촛불이 생각난다. 어서 스무 살이 되고 싶었으나 막상 스무 살이 되어도 별 볼일이 없던 시절, 동동주에 발갛게 물든 얼굴로 촛불이 눈물처럼 스며들었을 것이다.
청태춘은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각성제 같은 가수였다. 스스로 제도권과 맞지 않았다고 말했듯이 대중들과 소통하는 데 무척 서툴렀다. 그의 노래는 가사가 완전 시다. 며칠 전에 김어준이 정태춘이 영어권 가수였다면 밥 딜런보다 먼저 노벨상을 받았을 거라고 하던데 진짜 빈 소리가 아니다.
정태춘은 늘 깨어 있는 가수였다.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반짝이는 무대복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인기 가수보다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이나 위로 공연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다. 오래전에 (노무현 정권 때) 평택 대추리 현장에서 미군부대 확장 반대 운동을 하다 끌려나가는 장면이 생생하다. 데뷰 40주년을 기념해서 2019년 곳곳에서 전시회도 열리고 학술대회도 한다.
내게 정태춘은 그냥 살지 않으려는 개념 있는 가수였다. 아내 박은옥과 함께 부른 봉숭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며칠 전에 뉴스공장에 나온 (라디오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나중 영상으로 봤다) 정태춘의 모습은 곱게 늙은 소년이다. 이렇게 맑은 눈을 가진 중년으로 남기도 쉽지 않다. 모쪼록 좋은 노래 많이 듣는 올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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