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通

버리지 않는 마음 - 장혜영 사진전

마루안 2018. 11. 23. 20:50

 

 

 

 

집에서 가까운 홍대입구 작은 문화공간에서 열린 전시를 우연히 보았다. 경의선 숲길을 산책하다가 홍대까지 걸을 때가 자주 있다. 이곳은 이따금 차 마시러 들어간 곳인데 눈길 가는 전시가 열리기도 한다. 책도 읽고 차도 마시고 선물도 사는 일종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작지만 실속 있는 이런 공간이 많았으면 한다. 내 취향은 아니어도 문화 공간은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장혜영이라는 젊은 작가는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작품 사진보다 기록 사진을 많이 찍는 모양이다. 홍대거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사진은 딱 요맘때와 맞아 떨어진다. 늦가울도 아니고 초겨울도 아닌 지금 몇 장 남은 은행잎이 각도가 많이 기울어진 햇살에 아직 미련이 남았다.

미처 떠나지 못한 몇 장의 은행잎이 날리는 홍대거리는 젊음으로 넘쳐난다. 나는 오늘 이 사진들에서 완전히 꽂혔다. 어쩌면 젊은 친구가 이런 사진을 기록으로 남길 생각을 했을까. 사진을 들여다보면 그냥 보이는 대로 셔터를 누른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의 눈으로 본 풍경임을 느낄 수 있다. 사진은 기계(카메라)가 찍지만 셔터는 사람이 누른다. 누구나 찍을 수 있지만 아무나 담을 수 없는 사진이다. 염치 없이 몇 장 훔쳐왔다. 혼자만 봐도 좋은 사진들이다. 영어에 우리말이 심하게 오염되고 있는 요즘 이런 한글 간판이 반갑고 소중하다.

신기하게도 사진에 나온 장소가 내게는 많이 익숙한 곳이 여럿 있다. 을지로, 동대문, 혜화동 등 내가 지나쳤던 공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왜 그때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청춘의 소중함을 몰랐을까. 이런 풍경 또한 하나 둘 사라지고 기억 속에만 있다.

사진집도 구입했다. 작품집 발간 기념으로 열린 전시다. 아마도 큰 전시장을 빌릴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세련된 최신 유행 공간보다 이 사진처럼 오래된 공간이 나는 좋다. 요즘 흔히 입에 올리는 핫플레이스에서는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없다. 나는 이런 풍경에 열광한다. 좋은 사진이란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