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흰 그늘 속 검은 잠 - 조유리 시집

마루안 2019. 1. 15. 21:38

 

 

 

어릴 때 유난히 굿을 자주 하는 친구네가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집과는 달리 친구네는 그런대로 잘 사는 마당이 넓은 집이었다. 우리집과는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그 집에서는 가끔 굿이 열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예닐곱 살 무렵일까. 친구집 안방에서 무당이 징을 치면서 구슬프게 주문을 외던 기억이 있다.

그 징소리를 들으며 나는 친구와 골목에서 구술치기를 했다. 그 때 우리는 이 놀이를 다마치기라 불렀다.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 늘 할머니나 어머니가 머리에 흰 수건을 동여 매고 누워 있었다. 어느 날은 할머니가 누워 있고 어느 날은 어머니가 누워 있엇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며 신병이라고 수군댔다. 그 때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친구 어머니가 무당이 될 팔자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서였을까. 친구 집 대문 위와 안방문 위에는 늘 빨간 무늬가 새겨진 부적이 붙어 있었다.

이 시집은 순전히 제목 때문에 읽게 되었다. 흔히들 시집을 많이 출판하는 메이저 출판사에서 나온 시집을 선호하지만 나는 그걸 믿지 않는다. 작은 출판사에서 만든 시집 중에 이렇게 보석 같은 좋은 시집이 발견되기도 한다.

시인의 이름은 낯설지만 약력을 보니 등단 10년이 되었다. 시집을 펼치면서 꼭 어릴 때 친구집에 붙어 있던 부적을 뜯어 본 느낌이다. 첫 시집이라는데 몇 편 읽으면서 된통 뒷통수를 맞았다. 어라, 이런 시인이 있었어? 내가 왜 여태 몰랐지?

손이 닿지 않아 친구를 엎드리게 하고 그 등 위에 올라가 뜯어 낸 부적은 이제 무섭지 않다. 이 시집은 표지부터 내용까지 글씨 같기도, 무늬 같기도 했던 알 수 없는 부적을 해독하는 무당이 된 기분이다. 술술 읽히면서 묘한 긴장감을 일으키는 싯구에 몰입하게 만드는 서술력이 대단하다.

자기가 두드리는 징소리에 취한 무당의 기분이 이럴까. 가끔 먼 조상이 티벳의 무당이었거나 내 몸 어딘가에는 천형처럼 새겨진 부적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바람으로 새긴 부적,, 윤회를 믿지 않지만 나는 어쩌다 사람으로 태어나 이런 시집을 읽게 되었을까.

심정이 복잡하고 가슴에 맺힌 것이 많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시집이다. 가뜩이나 세상 살기 팍팍하고 심란한데 한가하게 무슨 시집이냐고 할 게 아니다. 때론 역설적으로 예술이나 문학 처방전이 직빵일 때가 있다.

헛바람만 불어 넣는 연속극을 보며 히덕거리거나 먹방을 보며 공허한 대리 만족을 하지 말고 이런 시집 읽기를 권한다. 가슴에 얹혀 있던 우울이나 슬픔의 체증이 씻은 듯이 내려갈지 모른다. 실컷 울고 난 후에 코 한번 팽 풀고 난 느낌이랄까. 진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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