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동양방랑 - 후지와라 신야

마루안 2018. 12. 27. 21:35

 

 

 

그의 책을 언제 읽었더라, 돌이켜 보니 오래전이다. 서른 중반이 넘도록 중심을 잡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떠돌던 친구가 훌쩍 인도로 떠났다. 그가 떠나면서 신촌의 허름한 술집에서 말한 책이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방랑이었다. 그때가 인도 여행이 유행할 때였기에 그도 덩달아 인도 바람이 들었다.

한 달 정도 인도에 머물다 온 이후 그는 티베트를 여행했는데 그때도 후지와라 신야의 책을 읽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서점에 인도에 관한 책이 무척 많이 깔려 있었다. 여행서는 물론이고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그때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던 후지와라 신야의 책을 다시 읽었다. 두 권짜리를 한 권으로 묶어 다소 두껍고 무거운 책이다. 그때도 꽤나 감동적이었는데 다시 읽어도 역시 그의 사진과 글은 시적이면서 몽환적이다. 이따금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 오래전 어느 잠결 꿈속의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의 글이 그렇다.

아직 티벳트도 인도도 가보지 못했지만 그의 책을 읽으면서 함께 실린 사진을 보자 그때의 설렘이 아련히 떠오른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하지 못한 것이 훨씬 많은 너무 저렴한 인생이기에 남은 것이라곤 이런 추억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동양방랑>은 1944년에 태어난 후지와라 신야가 30대 후반 동양을 여행하면서 쓴 여행기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동을 거쳐 티베트, 서남아시아, 중국, 한국을 지나 조국인 일본 고야산까지 동양방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지구 반바퀴 넘는 거리를 여행했다.

거의 40여 년전 이야기지만 구닥다리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여행 안내서가 아니라 여행 인문학서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여행 정보는 어디서든 넘쳐나지만 가슴이 설레게 공감 가는 내용은 많지 않다. 그저 자기 자랑 일색의 내용이다.

터키의 한 지방을 여행하던 중 조악한 포르노 잡지에 실린 한 여자를 찾아 앙카라 시내 술집을 뒤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술집에서 노래를 하는 가수라는 정보를 듣고서다. 이 여행기와 함께 실린 사진들울 보면 오래전에 봤던 <우작>이라는 영화에서 본 터키의 겨울 풍경이 생생하게 스쳐간다.

티베트 라다크 지역에서 은둔승들이 사는 사찰을 방문한 고행은 감동적이다. 저자는 그곳에서 21일을 머물렀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침묵 수행자들과 함께 흙반죽 같은 <파파>라는 조악한 음식과 순무를 간 물이 고작인 두 끼의 식사도 수행의 일부였다.

너른 챙모자에 썬크림 짙게 바른 얼굴에 선그라스까지 걸치고 멋진 풍경만을 쫒아 다니며 맛난 음식으로 포식을 하는 작금의 여행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수에 젖은 그의 사진발 영향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철학적이면서 사색하게 만드는 여행기도 드물다.

통행금지가 있던 1981년 한국을 방문한 여행기도 인상적이다. 스산하면서 우울한 한국의 겨울 사진이 오히려 삶의 본능을 자극한다. 그는 왜 경복궁이나 남산 타워를 가지 않고 청량리 창녀촌을 지나다 이런 일을 겪었을까. 그의 여행은 늘 이렇다. 그래서 좋다. 예전에 책 읽었다는 자랑질을 위해 주마간산식으로 읽었던 그의 책을 이참에 다시 찾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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