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고물장수 공 씨 - 백성민

마루안 2019. 1. 5. 21:37

 

 

고물장수 공 씨 - 백성민


새벽길을 나서면
졸음 겨운 별들이 낯을 씻기 시작한다.
걸음을 잡는 어둠들은 잠에서 깨지도 않은 채
하품을 하고
머리맡에서 들리던 낮선 여인의 음성은
꿈결처럼 아득하게 들려 왔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아내의 얼굴은 어느 골목길을 해매일까?
습관처럼 삼켜먹는 빵 한 조각과 우유 한 모금이
생목을 불러오고
휘청거리는 햇살을 허리춤에 동여매 본다.
성 임마누엘 (무료 급식소) 앞에는 하루를 살아야 할 목숨들이
남아있는 생의 길이만큼 줄서기를 하고
먼발치에 손수레를 세워놓는 허기진 육신은 꿈결 같은 여인의 한때를
근심한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돌아서는 길.
무릎은 왜 자꾸 무너지는지.....
모진 한숨으로 밤을 새우던 아내의 신 새벽은 빈 손수레를 가득 채우고
골목마다 울리는 공 씨의 가위질 소리는 숨은 어둠을 불러낸다.
손수레에 끌려 들어온 늦은 시간,
고물상엔 세월을 버린 한숨들이 쌓여 있고
공 씨 손에 쥐어지는 만 사천 칠백 오십 원,
두 평 반 아내의 얼굴을 찾아 가는 길,
초라한 외등아래는 붕어 빵 장수가 천연하고
거금 일천 원으로 붕어 빵 4마리를 가슴에 품는다.
가슴이 따뜻하다.
아내의 속살도 이러했으리라.

어둠 속에 묻히는 공 씨의 어깨 위로 하루가
깃을 내린다.

 

*시집, 죄를 짓는 것은 외로움입니다, 아름다운사람들

 

 

 

 

 

 

공 씨의 일상 2 - 백성민


허물고 지어내길 수 십 년,
아내의 꽃다운 나이와 같이 온 이부자리에는
한 쪽 귀퉁이 마다
한숨이 노닐기도
또 울먹이는 근심을 걷어 갠다.

방문을 열면
밤새 시리다는 투정도 없던
아내가 밟는 새벽이 열리고
수돗가의 세숫대야 속에는 야윈 새벽 달 하나가
시린 손아귀 사이로 빠져 나간다.

삐걱거리는 손수레에 끌려나오는 골목길
어젯밤 쌓아두었던 서툰 꿈들이 툴툴거리고
혹여 부지런한 마음들은 알까
날마다 버려지는 '산 61-4'의 비명 소리를

햇살도 가려 앉는
이름도 걸리지 않은 대문 앞

누군가의 한숨이 녹아들고
담을 넘어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옷깃 속을 파고든다.

오늘 실어야 하는 햇살의 무게는 얼마인지?
빈 손수레 안
앞서 걷는 공 씨의 그림자만 가득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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