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너는 너무 멀다 - 김이하

마루안 2019. 1. 5. 21:52

 

 

너는 너무 멀다 - 김이하

 

 

이 밤 모든 것은 막혔다.

고 그랬다 YTN 뉴스라면

밤새 돌고 돌아 또 그 뉴스를

틀어 주었을 법하지만

나는 그게 지겨워 슬그머니

밤참을 먹는다

 

희망이 끊어진 길이 두려워

창자 끝에서 욕은 끓어오르고 덮을 뚜껑은 없고

나도 몰래 새는 코피를

손가락 하나, 그거면 충분한 구멍을

휴지를 둘둘 말아 훔치며

 

아아, 너무도 질긴 밤

내가 너에게 그 말을 했어야 하는데

너를 죽이고 싶다는 그 말을

그러나 그 말은 끝내 술잔 속으로 도르르 구르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걸

너도 알았다

 

알아 버렸다, 이 생은 너무 낡아

어디 버릴 데도 없다는 걸

너도 알아 버렸다

너도 돌아서며 슬그머니 눈물을 훔쳤을 거라는

걸, 조금은 느끼겠다

우린 그렇다, 1960년대를 걸어온 길은

그렇게 미끈하다

 

훔친 눈물은 눈물이지만, 그렇다고

우리 가까이 가 버렸던 그 사랑을

아무렇지 않게 버리고 가 버리는 표정 없는 얼굴

나는 모르겠다, 자꾸만 멀어지는 길을 가는

그 맘, 너는

멀어서 그리운

 

 

*시집, 눈물에 금이 갔다, 도화

 

 

 

 

 

 

새벽 세 시, 문막에서 - 김이하

 

 

깨달음이란 뉘우침과도 같은가

밤새 풍경을 울려대는 종벌레들

그 곁에서 우짖는 귀뚜라미,

또 많은 벌레들의 소리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 전에 같이 술 마시던 사람의 얼굴인가

새벽 세 시 언뜻 깨어나

멀뚱멀뚱 어두운 사방을 돌아보다

비로소 여기가 어딘지 안 것인가

그러면 나는 여기 왜 왔고

그 술은 왜 마셨고, 나는 왜 지금 깨어나

방문을 열고 미친 듯이 달려드는 찬바람을

얼굴 가득 뒤집어쓰는 것이냐

새벽 세 시, 왜 나는

저 풍경 소리를 따라서

한없이 세상을 떠도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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