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전조 - 손월언

마루안 2019. 1. 2. 19:20

 

 

전조 - 손월언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라는
노신의 수상록이 있었지

그 책을 읽고 싶다
한 번은 읽었을 텐데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고

나는 그 책을 버린 것 같다
잡지 등등과 한 묶음으로
집 앞 쓰레기통에 내놓았으리라

.....그리고 나는 살았다
그리고 나는 여러 꽃들을 보았지만

내일의 꽃을 본 적은 없고
저녁에 그 꽃을 주워본 적도 없다

빨리 돌려본 필름 속처럼 바삐 살며
나는 어느 때 꽃을 잊었으리

세월이 한참을 지나는 지금
아침 꽃을 왜 저녁에 주워야 하는지 알게 된 지금.....

"꽃은 내일 필 것이다"
그래, 그 영원한 전조로서의 삶을 알 것도 같은 지금

 

 

*시집. 마르세유에서 기다린다, 문학동네

 

 

 

 

 

 

바닷가 - 손월언

 

 

겨울도 끝이 나고

바람도 잠든

 

양지에

얼굴을 그러쥔 여자

 

그 여자는

춥고 바람 불던 겨울에 봤던 여자다

 

볼과 코가 찬바람에 얼었다며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웃었었다

 

바람도 없고

춥지도 않은

양지는 견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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