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조용한 삶의 정물화 - 문광훈

마루안 2018. 10. 18. 18:47

 

 

 

손에 잡자마자 단숨에 읽어 내려간 책이다. 저자의 빼어난 문장력 덕분에 술술 읽힌 덕이다. 그렇다고 추리소설 읽듯이 줄거리만 따라 간 것은 아니다. 그의 문장은 예술적 체험에서 나오는 깊은 사유가 들어 있기에 조용히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두 번씩 읽은 대목도 여럿 있다. 그래도 복숭아 먹고 난 후에 손가락에 남은 향기처럼 여운이 여전하다. 그만큼 그의 문장은 따라 하고 싶을 정도로 질투심을 유발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개성을 갖고 살지만 저자의 예술적 일상은 모방하고 싶다.

문광훈 선생이 유명 작가는 아니다. 거기다 책을 낸 출판사도 생소하다. 그러나  책 내용은 쉬이 단물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알차다. <조용한 삶의 정물화>라는 제목도 시적이어서 좋다. 저자의 소박하지만 풍성한 일상과 아주 어울린다.

이런 책은 신간 소식에서도 잘 다루지 않는다. 내가 신간을 접하는 방식은 아주 고전적이다. 경향이나 한겨레 신문에 나오는 책소식과 주간지 씨네21이나 시사IN에 나오는 기사에서 신간 소식을 접한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도 문화부 기자나 사회 유명 인사가 추천하는 책을 믿지 않는다. 대개 그들이 추천하는 책은 기피하는 편이다. 어쨌거나 신간 소식을 꼼꼼히 메모했다가 서점에 가면 한 권씩 검사(?)를 한다. 프로필은 믿을 만한지, 지나치게 비싼 책은 아닌지,,

목차를 포함해 내용 몇 구절만 읽으면 몇 분만에 검사는 끝난다. 이렇게 까다롭게 고르다 보니 목록에서 지워지는 책이 훨씬 많다. 가능한 베스트셀러는 사지 않는다. 그런 책은 대충 서점에서 훑어보고 놓는 정도다. 많이 팔리는 책이 꼭 좋은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조용하게 서점에서 발견된 책이다. 문광훈 선생의 문장을 좋아하지만 유독 그의 예술적 일상이 마음에 들었다. 책 제목은 이름 모를 어느 스페인 화가의 그림엽서와 영화 스틸 라이프(still life)를 보고 느낀 감상에서 따왔다.

나도 그 영화를 인상 깊게 보기는 했지만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저자의 놀라운 통찰력 때문이다. 나는 유독 이 대목이 좋아서 이 문장을 세 번 읽었다. 많은 책을 읽기보다 좋은 글을 여러 번 읽는 것이 낫다.

석곡이라는 생명력 강한 난초를 우연히 키우게 된 사연도 긴 여운을 남긴다. 그 느낌은 이 대목 일부를 옮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좋은 책을 읽은 뒤가 개운하다. 버릴수록 마음이 풍성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한 책이다.

<불필요한 것은 가능한 덜어내고 필요한 것은 최소한으로 갖추는 것, 그것은 식물에 있어서나 인간 삶에 있어서나 생존의 핵심으로 보인다. 허영을 줄이는 일이기 때문일까. 석곡의 이 같은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얼마나 스스로를 단련해야 메마른 돌과 죽은 나무 위에서도 뿌리를 내릴 수 있는지, 그렇게 줄기와 잎으로 자라나 꽃까지 피울 수 있는지를 생각하곤 하였다. 그럴 때면 철골소심(鐵骨素心)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