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지상의 방 한 칸 - 이강산

마루안 2018. 8. 18. 22:28

 

 

지상의 방 한 칸 - 이강산
-집


지상의 방 한 칸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밤 그들이 맞이할 꿈조차
때때로 방 한 칸 마련 못하고 떠돌아다녔음을 안다

살얼음의 겨울밤부터 한여름까지
내 젊은 여행의 시절을 던져버린
탄광지대
꼬막껍질 같은 사택촌 똥골의 아내들이
새벽마다 태백선 비둘기호를 오르내리며
생선광주리나 옥수수다발로 쌓고 또 쌓아 이룬
검정 가슴
그 앙가슴 열면 잔잔히 고여 있을 한 칸의 방

아니면
수은 중독으로 먼저 간 열다섯 살 아우들이
애오라지 노동으로 건축한
지상의 살아 있는 집

오늘밤 우리가 선뜻 잠들지 못하고
언젠간 신혼의 사랑이 빛날 나의 방을 꿈꾸듯
우리가 꿈꾸는 만큼 이루어왔어도
끝내 이루지 못할 지상의 방 한 칸을 생각한다


*시집,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 실천문학사


 




말복 - 이강산
-六場3


장돌뱅이 30년
아버지의 여름이 간다
칠십세 살 먹도록 내가 왜 이렇게 살다 죽어
눈물 반 웃음 반
낮술에 취한 아버지의 머리 위
하얗게 서리 내리며 여름이 간다
오일장 떠돌다 지쳐 쓰러지다 보면
꿈 많은 청춘 가듯
객지 한평생의 무더위가 가고
여름 한철 더 즐거운 사람들
비명 같은 웃음소리도 가고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조차
객지의 잔뼈가 굵어가는 여름
부엌에 쭈그려 앉아 땀 훔쳐내고 있을
물수건에 젖어
고향 떠나듯 여름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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