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꽃과 뼈 - 신철규

마루안 2018. 8. 18. 21:56



꽃과 뼈 - 신철규



관을 불 속에 넣고 유족들은 식당에 간다
두 시간 남짓,
밥 먹고 차 마시기 적당한 시간이다


젖은 손수건을 내려놓고 목을 조였던 넥타이를 풀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긴다
검붉은 선지를 입에 떠넣고 우물거린다


어쩌면 영혼은 흰 와이셔츠에 묻은 붉은 국물자국 같은 것
몇 번 헹궈내면 지워지고 마는


관에 불이 붙고 수의가 오그라든다
살갗이 벗겨지고 뼈가 드러난다
우리는 모두 타는 것과 타지 않는 것으로 분리된다


의자에 걸쳐놓은 영정 사진이 웃고 있다


그의 손을 잡았을 때 나무껍질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었다
붕대를 몇 겹이나 두른 배에 꽂아놓은 관으로
수액이 계속 흘러나왔다
그는 말라갔다 완전연소를 꿈꾸며


나는 봉지에 든 귤을 천천히 까먹었다
손톱이 아릴 때까지
얼굴이 노란 물풍선이 될 때까지


뼛가루를 뿌려놓은 듯 하얀 벚꽃이 난만하다
목말 탄 아이가 팔을 허공에 젓는다
뭉텅 뭉텅, 구름이 지나간다


몸통이 찢긴 벌레를 이고 가는 개미의 행렬
앞산 공동묘지에는 화농 같은 봉분이 피어 있고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복수에 빠진 아버지 - 신철규



백중물*이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남부터미널에 내리자마자 그는 연거푸 담배를 피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복수가 들어찼다 심장 아래께
젓가락만한 주사바늘이 박혔다


그는 분주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계속 뒤처졌다
내 옷깃을 몇 번이나 잡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왼쪽 옆구리에 찬 복수가 출렁거렸다


내 키가 지금의 절반이었을 때, 그와 나란히 오줌 눈 적 있다
내 눈앞에 그의 거시기가 있었고 그 끝에서 오줌 줄기가 시원하게 뻗어나갔다
영대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그의 몸을 수건으로 닦다가
볼품없이 쪼그라든 그것을 다시 보았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하늘색 모포로 그의 아랫도리를 덮었다


검은 지하철 유리창에 하얀 내 얼굴이
걸려 있다 그의 머리는 한 뼘 정도 내 아래에 있고
나는 그가 살아온 생의 절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이 끝나도
그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그는?
백중물을 보며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한다


농약줄이 엉킨 것처럼 복잡한 지하철 노선도를
그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마에 돋아난 푸른 링거줄
내 몸이 천천히 왼쪽으로 기운다
우리는 환승역을 놓치고 지하철은 어둠 속을 파고든다


엑스레이 필름처럼 검은 유리창 속에
그와 내가 흔들리고 있다


*백중(伯仲)날이나 그 무렵에 많이 오는 비.





*시인의 말 - 신철규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혼자 빠져나와
이 세상에 없는 이름들을 가만히 되뇌곤 했다.
그 이름마저 사라질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잠깐 뒤돌아보게 하는 것,
다만 반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
그것이 시일 것이라고 오래 생각했다.


숨을 곳도 없이
길바닥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이
더는 생겨나지 않는 세상이
언젠가는 와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


하늘에 있는 마리와 동식에게
그리고 고향에 계신 할머니께
이 시집이 따스한 안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슬픔의 무게를 나누어 져주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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