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위대한 겨냥 - 채풍묵

마루안 2018. 8. 17. 23:23

 

 

위대한 겨냥 - 채풍묵


휴게소 화장실에 급하게 들어선
옆 사내의 한 줄기 겨냥을 훔쳐본다
종족 번식 문명 발달 영토 확장
모두 겨냥의 산물이다
순록 같은 생존을 겨누던 투창
성벽에 갇힌 삼국 시대를 겨누던 화살
약소 영토를 겨누던 제국주의 대포
현지 문화를 겨누는 다국적 기업 전략
푸른 지구를 겨누는 인공위성의 렌즈
인류의 이어짐이란 주체를 달리하며
겨냥 할 표적 바꾸기의 연속 아니던가
선사 시대부터 장전해 온 총신을
바지춤에서 은밀하게 꺼낸 사내들
능숙한 겨냥으로 집중 사격을 단행하더니
총구를 탈탈 흔들어 흔적을 날려버린다
인류 탄생 이후 현재까지 이어온
가장 위대한 겨냥이 거기 있다


*시집, 멧돼지, 천년의시작


 

 



유목 - 채풍묵


수렵 채취 이후 생계 방식 중
가장 오래된 미래는* 유목이라고 한다
땅이야 하늘이 선물한 공동의 것
땅이 재산이 될 때 땅이 인간을 지배하리니
누구든 초원을 소유하지 않는다
목마른 들판은 풀을 키울 수밖에 없어서
한 곳에 오래 머물면 살갗이 드러난다
생존하려면 반드시 옮겨가야 하고
움직이려면 최소한의 물자만 필요한 법
가축이든 물건이든 차고 넘치면 짐이다
말달려 왔다가 말달려 가는 삶
하늘이 준 대로 한동안 빌려 쓰다가
말하지 않아도 반드시 돌려주는 유목은
역사에서조차 자신의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책의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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