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삼겹살 - 박수서

마루안 2018. 8. 17. 22:42



삼겹살 - 박수서



술상 점령군으로 삼겹살이 딱이지만
삼겹살에 술 한잔하자 쉽게 권하지 못한다
우르르 사내들끼리 꼬치처럼 어깨를 꿰고 고깃집에 들어가
푸른 초원에 배 깔고 누워 있는 고깃덩이를
집게로 길어 올려 가위질을 하고
적당히 육즙이 터져 나와 질질 침 흘리게 만들려면
고도의 기술과 정인 정신이 필요한데,
나는 가위질도 서툴고 고기를 뒤집다
맛도 뒤집거나 숯처럼 태우기 일쑤다
그렇다고 관람석에 등짝 붙이고
개구리처럼 젓가락 혀만 날름거리기는 미안하고
누군가를 식모처럼 부리는 것도 불편하여
대체로 탕 집이나 볶음 집을 간다
삼겹살을 잘 굽는 사람은
분명 가슴에 물컹하고 고소한 생고기를 품고 있는 게다
누구라도 꺼내어 한 코 떼어 가라고
사는 일에 지쳐 눌린 어깨에 피가 되고 살이 되라고



*시집, 해물짬뽕 집, 달아실








잡탕밥 - 박수서



여기 잡탕밥 둘!


사는 게 뭐라고
그까짓 인생이 뭐라고
섞고 볶다 보면 그게 그거 아니겠어
새우의 갑옷을 벗기고,
오징어를 칼등으로 으깨고,
해삼을 능지처참하고,
전복을 비응도(飛鷹島) 우럭처럼 날리고,
소라의 어깨를 긁어
고추기름, 식용유, 대파, 마늘, 간장, 굴소스가
떡 하니 입 벌려 날름 밥을 받아먹고
뒹굴다 보면 잡탕밥 아니겠어
사는 일이 짬짬하고 싱거울 때
삶의 날것들을 모아 채썰기라도 하여
모아두면, 아니 이 삶과 저 삶 위에 달걀 하나 툭,
까 올려 비비고 볶아 본다면 알겠지
사는 일이 뭐라고
지지고 볶으며 날마다 날마다
잡탕밥을 짓고 있는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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