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말복 - 유병근

마루안 2018. 8. 16. 22:15



말복(末伏) - 유병근



이쯤에서 마침표를 찍고 마침표 아닌

쉼표를 찍고 제자리걸음이나 걸을까 한다

작은 웅덩이에 내려앉은 구름 두엇 송이

한가위 그 다음날의 하늘에나 가만히 눈 돌릴까

눈 돌릴 데 없는 나날의 주름살 같은

물살에나 덧없이 흐를까 한다

웅덩이에 쉬어가는 구름의 발걸음에

젖은 내 발걸음을 포갤까 한다

마침표처럼 아니 쉼표처럼 쉬었다 가는

느긋함이나 배울까 한다

놓쳐버린 이야기나 풀어볼까 한다

그늘 아래 잠든 햇빛의 옆구리나 슬슬 긁어줄까 한다

햇빛 눈뜨는 기척에 덩달아 눈 떠볼까 한다



*시집, 통영 벅수, 작가마을








통영 벅수 - 유병근



생각에도 줄기가 있다

엇갈린 다음에 간추려본다

거두절미한다는 말

군더더기란 말, 함부로 주절댄

엉클어진 말의 실타래

갈증에 타는 목이 컬컬하다

햇볕에도 컬컬한 소리가 있다

비와 바람에도 있는 소리를

뒤엉킨 생각으로는 풀 수 없다

처음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질긴 목숨의 길이 자꾸 헷갈린다

길에도 뿌리가 있다는 말

오늘만은 아니다 꾸불꾸불한

덧없는 헷갈림은 좀 그렇다

충무김밥을 찿아가는

선창 길목에 우두커니 선다






# 전대미문의 기록적인 더위도 이제 막바지인가. 말복에 한갓진 위로를 한다. 갈수록 겨울보다 여름 나기가 더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매미들만 신이 나서 목이 쉬도록 울어대는 요즘, 시 읽는 한가로움으로 견딘다. 훗날 이 지독했던 올 여름을 그리워할까? 무사히 살아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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