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인생극장 - 노명우

마루안 2018. 8. 16. 22:29

 

 

 

사회학자 노명우는 학자라기보다 작가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학자가 열심히 공부해서 자기 걸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대중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글 쓰는 실력이 되어야 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문장력을 갖춰야 한다.

이점이 머리 좋은 판검사들이 명문대에서 부지런히 공부해 자신들의 출세만을 위해 승승장구하는 것과는 완전 다르다. 노명우는 이전 책에서부터 아주 쉬운 문장으로 대중들에게 사회학을 알려주는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 책은 노명우 선생의 부모님 일생을 당시의 대중영화와 연결시켜 아주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다. 부모님의 일대기이지 한국 현대문화사라 해도 되겠다. 몇 년전에 유시민이 자신의 55년 인생을 한국현대사로 묶어낸 흥미로운 책에 버금간다.

1920년대 생인 아버지와 1930년대 생인 어머니의 일생은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정점에 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박정희 반공시대와 민주화 시기 등 사람이 일생 동안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망라한 완결판이다.

어느 인생인들 책 한 권 분량의 사연이 없을 것인가. 그러나 대부분의 인생들이 아무 흔적 없이 살다가 사라지는데 반해 노명우는 부모님의 일생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현대사와 문화사를 쉬운 문장으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 책을 부모님의 인생 자랑이 아닌 당시의 보편적인 사람들의 일생으로 연결시킨다. 자고로 학자란 이래야 한다. 거기다 딱딱한 사회학을 그의 빼어난 문장력으로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킨다. 책일 잡으면 단숨에 읽게 만드는 힘이다.

이런 저자의 성품은 온전히 부모의 영향이다. 누구든 부모룰 선택할 수도 없지만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 홀로 자라서 인격체가 완성될 수 없다. 부모란 살과 피만 나눠주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초등학교 졸업인 아버지와 무학인 어머니는 부지런히 돈을 모아 자식들이 원하는 교육을 끝까지 시켜 이런 훌륭한 학자를 만들어냈다. 저자는 아버지가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시고 1년 후에 바로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한동안 슬픔과 인생 무상에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슬픔을 추스리고 찬찬히 부모님의 유품을 정리하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얻는다. 한 사람의 일생이 모이고 모인 것이 역사다. 流産이든 遺産이든 간에 기록되지 않은 인생은 사라지는 것, 이런 책이 좋은 책인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