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울지도 못했다 - 김중식 시집

마루안 2018. 9. 8. 20:25

 

 

 

잊고 있었던 김중식 시인이 오랜만에 시집을 냈다. 한때는 표지가 닿도록 꽤나 열심히 그의 시를 읽기도 했다. 내가 열심히 읽는 시집이란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틈틈이 꺼내 몇 번씩 반복해서 읽는 시집이다. 나는 지금도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대신 시집을 열심히 들여다 본다.

왕성한 예술 활동을 하는 시인이라면 적어도 5년에서 10년 사이에 시집 한 권은 생산해야 독자들에게 잊혀지지 않는다고 본다. 나름 열심히 시를 읽고 있는 내가 보기에 올림픽 주기인 4년 터울이 가장 무난한 시집 생산 주기가 아닌가 한다. 거기다 조금 숨을 고르고 다듬을 시간을 보탠다면 5년에 한 권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모든 예술이 그렇겠으나 시라는 것도 써질 때는 폭풍처럼 시상이 떠오르다가도 안 써질 때는 몇 년씩 아무 진전이 없다고 하니 시집 내는 주기 또한 맘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닭이 모이를 먹듯 나처럼 읽기만 하는 독자는 이렇게 철없는 말을 쉽게 한다.

소설가 박영한 선생이 <문학이 암보다 고통스러웠다>고 했거니와 글쓰기가 수명을 단축시킬 만큼 입술이 타는 극한의 작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문학을 예술의 꽃이라고 하지 않은가. 시인 또한 특별한 사람으로 대부분 인정을 한다. 거미줄 나오듯 함량 미달의 시를 남발하며 시인 행세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오랜 기간 시집이 나오지 않은 김중식 시인을 의심하기도 했다. 이 사람 혹시 하면서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시인 지망생 친구가 있었다. 매사가 비관적인 염세주의자였는데 그 친구는 결국 자살로 짧은 생을 마쳤다. 사후 그의 서랍에서 습작시가 우수수 쏟아진다.

죽은 친구의 시를 조금씩 손질해 발표를 했고 내 시로 둔갑시켜 시집을 냈다. 이후 밑천이 떨어진 시인은 들통이 날까 두려워 더 이상 시를 발표하지 않고 청탁도 받지 않는다. 뭐 대충 이런 상상 말이다. 엉뚱한 상상도 시인의 시를 좋아한 탓이 크다.

어쨌든 25년 만에 시집을 내면서 나의 그럴 듯한 상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기다렸다기보다 잊고 있었는데 시집을 내면서 다시 시인을 기억하게 만든 경우다. 하긴 첫 시집 하나 내고는 활동을 멈추고 영원히 묻혀버린 시인이 부지기수다. 시인이 되기 위한 가장 든든한 등용문인 신춘문예에 당선만 되고 시를 안 쓰는 작가도 많다.

오래 굶은 사람일수록 천천히 먹어야 하건만 막상 닥치면 허겁지겁이다. 이 시집을 잡자마자 그랬다. 허겁지겁 훑으면서 시를 맛보고 다시 천천히 한 편씩 읽어 내려가며 맛을 음미했다. 여전히 시에서 톡 쏘는 매운 맛이 느껴진다. 군데군데 냉소적인 문장도 여전하다.

첫 시집에서는 보지 못했던 톡특한 형식의 시도 몇 편 실렸다. 신선하다는 느낌보다는 내게는 적응이 잘 안 되는 시였다. 어쨌거나 오랜만에 나온 시집은 충분히 감동을 주었다. 아껴가면서 읽다가 책꽂이에 꽂아 두고 잊힐 만하면 다시 꺼내 읽어볼 요량이다.

다음 시집이 또 언제 나올지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입구에서부터 다음 시집에 대한 기대를 단념하게 만드는 짧은 문구가 실렸다. <첫 시집은 어머니께, 두 번째 시집은 마담 주얼리에게, 유고 시집은 세상의 딸들에게>,, 시와 함께 살아만 있다면 30년 이상쯤 기다린들 어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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