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 - 김창균 시집

마루안 2018. 8. 15. 18:40

 

 

 

갈수록 좋은 시집 만나기가 쉽지 않다. 신간 시집은 쏟아지는데 보는 눈이 모자라서인가. 서점에 진열된 엄청난 양의 책 앞에서 막막해진다. 읽을 책이 많아서가 아니라 이런 책을 누가 읽을까에 생각이 닿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무작정 들른 헌책방에서 시집 하나를 발견했다.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 이 시집을 읽기까지 몰랐던 시인이다. 이것이 세 번째 시집이라는데 여태 내 눈에 띄지 않았다. 독자가 모르는 시인은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그렇고 그런 시인이려니, 별 기대 없이 몇 장 뒤적거리다가 내 눈을 끌어당기는 묘한 흡인력을 느꼈다. 아! 이 사람 괜찮은 시를 쓰는구나. 내가 전문적인 시 읽기는 못 했지만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어떤 촉을 감지했다.

단박에 내 마음을 관통한 이런 시집은 읽는 방식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아껴가면서 읽는 것, 지난 봄부터 틈틈히 몇 편씩 읽는 맛이 쏠쏠하다. 숨겨 두고 혼자 먹는 간식 맛이 이럴까. 읽었던 시, 지나쳤던 시를 다시 읽으면 새로운 맛이 우러난다.

절절함이 느껴지는 서정성 짙은 시도 좋지만 그 행간에 숨어 있는 슬픔 같은 것이 좋았다. 이 사람 참 상처가 많은 시인이구나. 가슴에 맺힌 것이 많겠구나. 이런 감정이 시종일관 생긴다. 읽을수록 그 느낌이 배가 되는 시다.

 

맺힌 것 없는 시인이 어디 있냐고 할지 모르겠다. 맞다. 시인은 전부 몸 속 어딘가에 맺힌 것이 숨어 있다. 그 맺힘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다를 뿐이다. 이 시인의 장점이 그 맺힘과 슬픔을 절제하면서 풀어내기에 공감이 깊어진다.

 

<붉은 꽃이 차츰 어두워져서 자신을 탈색하는 시간>, <먼 데 사는 혈육이 몹쓸 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 <늦게 나와 일찍 병드는 여린 고춧잎>, 같은 쉬운 문장이 박힌 시들이 긴 여운을 남긴다. 평론가들은 어쩌다 이런 시집을 놓치는 것일까.

좋은 시집에 대한 예의는 이런 기록이라도 남기는 것, 오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훗날 빛바랜 앨범 들춰 보듯 기억을 되새김질 할 수 있다면 나름 열성을 다한 시 읽기에 대한 작은 보상은 될 것이다. 이런 예의 또한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이국의 소수 종교로 개종했다는 옛 애인의 소식이/ 백일홍 꽃잎 날리듯 경황없다>, <절 뒷마당에서 머리를 깎으며/ 조용히 한 생을 내려놓는 젊은 수좌와 같이>,, 이런 문장에 스르르 무너지면서 시집으로 내 가슴에 불도장을 찍는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던가. 안동 병산서원의 백일홍을 보고 오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