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랑의 뒤쪽 - 황학주

마루안 2018. 8. 9. 22:30



사랑의 뒤쪽 - 황학주



당신의 등이 궁금해
뒤에 가 있는 당신의 발자국


하늘 언저리가 붉은 어느 여름이었을 거야
당신의 눈에서 물방울 주렴을 본 후
당신의 가장 뒤에 떨어져 도착하는
댕그란 달빛
날 기다렸나? 하는 눈빛을
문득 내 차례처럼 기다려보는 것이다


당신의 뒤가 드러나는 해변
촉수 낮은 여기서 잠든다 해도
사무치는 당신의 앞쪽이
사랑이라는 법은 없어서
밤의 이부자리 길게 편다


뒤에 맨 혹을 끌어내려
한번이나마 보듬어 보려는
소리 없는 눈물이 있다



*시집, 某月某日의 별자리, 도서출판 지혜








해변극장 - 황학주



여기는 영화라는 곳이다 바람의 손발인
사랑들은 해 지는 해변에서
쏙닥거리는 노인의 썰물을 만날 것이다
한번 해당화를 사랑으로 본 사람은 계속해서 해당화를 보면
영화하고 싶다는 말을 할 테지만


生死를 보러 온 연인들이 받아 든 파란 스크린
갈매기 날고
자신의 점멸등을 만지며 토끼 눈처럼 서로 붉어가는 시간이 오면
신원미상인 자신에게 적응하지 못한 어떤 사람이
조마조마 남의 영화인 척 할 수 있는 영화
나처럼 기억력 나쁜 사람이
궁금증을 가지고 또 볼 수 있는 영화를
인생이라는 슬픔은 '관람가'라고 하지


한 남자가 맨발인 추억의 여자를 업고 뒤뚱뒤뚱 걸어 들어가는
바다 신은 꼭 필요했던 것일까
흘러버린 시간을 해송 파라솔 밑에 고무신처럼 앉히고
배회하는 것은 아니지
이 영화 누가 만들었어?
세상에서는 질문으로만 상영되는 인생을
매번 의심하는 것처럼 하늘이 붉다


노숙하는 흰 갈매기 발자국이 여럿 찍혀있는
오늘의 엔딩 크레디트
수박을 용달차에 가득 싣고 온 마을 이장은
영원이라는 릴에 낚였다는 평도 있다






# 몇 년전 이 시를 읽고 옮겨 놓은 노트 한 귀퉁이에 이런 구절이 보인다. <좀 촌스럽고 항상 변두리적인 것이 나의 시였다. 삶의 절박성이 '맑게 거른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분명 내가 쓴 건 아닐 거고 어디선가 읽은 시인의 글을 베낀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왜 그때 매사에 어리석고 서툴기만 했는지,, 떠나간 사랑보다 내가 낭비한 인생이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