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희랍(希臘) 비극을 읽고 싶은 소년 - 전대호

마루안 2018. 8. 9. 22:16

 

 

희랍(希臘) 비극을 읽고 싶은 소년 - 전대호

 

 

누구에게나 비극을 동경하는 시기가 있다

앞으로의 삶도 우연이 지배할 것임을

직감하는 순간, 불행히도

누구나 반발한다

그렇지 않을 거야, 도리질하는 시기

 

한 알갱이씩 집어올려서라도

이 안개를 걷어내고

태양을 대면하겠어

내 삶이 순수한 비극임을

확인할 테야 그리하여

어른이 되는 거야

희뿌연 안개 속에서 그는 말했다

 

누구에게나

비극을 동경하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에 삶을 결심한 사람은

차츰 우스꽝스러워지는

자기 자신을 견뎌야 한다

안개 속에서 그는 늙어간다

점점 자주 안개의 무늬에 취하면서

 

 

*시집, 성찰, 민음사

 

 

 

 

 

 

나무꾼 - 전대호


삶을 덥힐 땔감을 구하러 간 남자
성실하고 건장한 남자
튼튼한 지게를 지고
일찌감치 산으로 간 그 남자

일에 열중하던 그 남자
갑자기 내린 어둠에 놀란다
환한 나무들 틈에 있는 동안
먼 곳으로부터 해는 지고
그는 길을 잃는다

삶을 덥힐 땔감을 구하러 왔다가 길을 잃은 남자
죽음을 앞둔 주름살처럼 구불거리는 산길
수천의 팔을 뻗어 터널을 만드는 나무,
그리고 그때 희미한 불빛을 깜박이는 허름한 집

성실하고 건강한 그 남자
하룻밤만 묵어가자고 주인을 부르고
오랫동안 그를 기다려온
구렁이 까치 토끼 여우 사슴이
속삭이며 그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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