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리운 가족 - 박판식

마루안 2018. 8. 8. 20:36

 

 

그리운 가족 - 박판식


결점투성이 피와 피를 잇는 꽃과 나뭇잎
엉겨 붙은 혈관을 풀어 여덟 갈래로 소생하는 기적은 너무도 사소한 일
나뭇잎은 자라지 않는다 나뭇잎은 본래의 모양을 찾은 것뿐이다
그러나 병든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 것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나뭇잎들의 뼈가 서걱거린다 피가 도는 푸른 혈관이 보인다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뱀처럼 나는 희망의 기후를 감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균을 저울질하며 눈물이 부풀어오르진 않는다
바람은 나뭇잎들의 위태로운 차양을 찢어놓는다
나는 흔들의자에 앉아 좀처럼 한 가지 생각에 초점을 맞추지 못 한다
한랭의 기후를 견뎌낸 나무들을 누군가 전지하고 있다
그것은 갈고리 달린 창으로 발목을 끊어내는 고대의 살육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피가 솟구치는 일은 없다
누군가는 그것을 성장이라고 부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잘 여문 나뭇잎이 불가분의 운명으로 떨어져 내릴 때
비명을 내지르는 것은 분명히 우스꽝스러운 일일 테니까

 

 

*시집, 밤의 피치카토, 천년의시작

 

 

 

 

 

 

후송 - 박판식

 

 

환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생식기를 잊었다

쓸모없는 장식물처럼 여름과 겨울이 가고

공교롭게도 후송열차는 수도와 위성도시를 모조리 거쳐

최후방의 해변으로 환자들을 데려갔다

정원을 독점한 가지 뻗은 동백나무의 기쁨처럼

교묘한 패배감이 환자들을 도취시켰다

전염성 있는 병, 미친 절규, 위생과 결함을 격리시키는 일이

환자들의 유일한 일과였다

고행을 자처하는 승려도 이와 같지는 않았으리라

불침번, 장교의 찝차 닦기, 번거로운 집결, 점호

수술 혹은 약물치료를 요하는 명찰과 순번

죽을 운명과 완치는 이들의 가장 순수한 곡예였다

하지만 그것도 칼과 수술조명, 먼지보다 하찮은 의술에 매달려

조용히 피를 흘리거나 반응이 없는 체하거나

예상 외로 큰 비명을 지르는 일이 고작이었다

운이 좋다면 병을 반납하고 생식기를 되찾아 가는 정도

그것도 자신의 운명을 도약하기에는 가소로운 비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