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적대 - 조성국
목매달아, 몽둥이로 뒈지게 패나서
뒤진 줄만 알고
맘 턱 놓고 터럭을 그슬리는데
느닷없이 그가
벌떡 소스라치며 줄행랑을 치는 것이다
어안이 벙벙한 것도 잠시
냅다 쫓아가 노릿한 비린내를 풍기며
혓바닥 말아 감치며 실실 불러대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손등을 쓰윽 쓱 핥으며 간지럼까지 태우는 통에
불끈 쥐었던 몽둥일 놓고 말았는데
그리하여 불탄 외양이
사뭇 자생된 그가 새낄 낳고
그 새끼 하도나 앙증스러워 쓰다듬는
내 눈동자와 마주칠 적마다
눈도 못 뜬 벌거숭이의
제 새끼를 물어 자릴 옮기고
또, 그렇게 몇 번씩이나 더 자리를 옮기더니
아예 햇볕도 안 드는
마루 밑 깊숙이 숨기는 감파란 눈자위에
쭈뼛 머리끝 설 만큼의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하였다
*시집, 둥근 진동, 애지출판
밥을 빌다 - 조성국
새끼 낳고 신경이 곤두선 개
조심 푯말이 붙어있긴 하였지만
설마하니 내 발목을
물어뜯을 줄은 미처 몰랐다
달포 넘게 비운 집
주인을 언제 봤냐는 듯이
모로 누운 채 축 처진
젖을 빨리다가도 벌떡 몸 일으켜
으르렁거리더니
제 밥을 들고 나오는 어머니의 신발 끄는 소리엔
꼬리 짓이 별스럽게도 요란했다
납작 엎드려 오줌까지 찔끔 지리며
벌벌 기었다 하기야 나도
탱탱 부어오른 발목을 절뚝거리며
바툼한 동네 의원커녕 사장이 바뀐 공장에
직수굿하게 밥 빌러 가는 꼬리뼈가
꿈틀거리던 때 있었거니
*시인의 말
죄송하다
또 시의 집을 짓게 되었으니,
부실투성이 시들께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도 마음 가는 게 이것뿐이니 어쩌랴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아가씨로 돌아갈 수 있다면 - 김병심 (0) | 2018.08.07 |
---|---|
저 바깥으로 향하는 한결같은 피의 즐거움 - 박성준 (0) | 2018.08.07 |
고구마꽃 - 이동훈 (0) | 2018.08.07 |
발효된 산 - 강영환 (0) | 2018.08.07 |
불완전한 선희 - 이진희 (0) | 2018.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