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거룩한 적대 - 조성국

마루안 2018. 8. 7. 15:22



거룩한 적대 - 조성국



목매달아, 몽둥이로 뒈지게 패나서

뒤진 줄만 알고

맘 턱 놓고 터럭을 그슬리는데

느닷없이 그가

벌떡 소스라치며 줄행랑을 치는 것이다


어안이 벙벙한 것도 잠시

냅다 쫓아가 노릿한 비린내를 풍기며

혓바닥 말아 감치며 실실 불러대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손등을 쓰윽 쓱 핥으며 간지럼까지 태우는 통에

불끈 쥐었던 몽둥일 놓고 말았는데


그리하여 불탄 외양이

사뭇 자생된 그가 새낄 낳고

그 새끼 하도나 앙증스러워 쓰다듬는

내 눈동자와 마주칠 적마다

눈도 못 뜬 벌거숭이의

제 새끼를 물어 자릴 옮기고

또, 그렇게 몇 번씩이나 더 자리를 옮기더니

아예 햇볕도 안 드는

마루 밑 깊숙이 숨기는 감파란 눈자위에

쭈뼛 머리끝 설 만큼의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하였다



*시집, 둥근 진동, 애지출판








밥을 빌다 - 조성국



새끼 낳고 신경이 곤두선 개

조심 푯말이 붙어있긴 하였지만

설마하니 내 발목을

물어뜯을 줄은 미처 몰랐다

달포 넘게 비운 집

주인을 언제 봤냐는 듯이

모로 누운 채 축 처진

젖을 빨리다가도 벌떡 몸 일으켜

으르렁거리더니

제 밥을 들고 나오는 어머니의 신발 끄는 소리엔

꼬리 짓이 별스럽게도 요란했다

납작 엎드려 오줌까지 찔끔 지리며

벌벌 기었다 하기야 나도

탱탱 부어오른 발목을 절뚝거리며

바툼한 동네 의원커녕 사장이 바뀐 공장에

직수굿하게 밥 빌러 가는 꼬리뼈가

꿈틀거리던 때 있었거니






*시인의 말


죄송하다

또 시의 집을 짓게 되었으니,

부실투성이 시들께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도 마음 가는 게 이것뿐이니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