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주검의 눈빛 - 김이하

마루안 2018. 8. 7. 13:48

 

 

주검의 눈빛 - 김이하

-탄광묘지 8

 

 

여름, 사금파리의 분노를 아는가

쩡쩡한 대지의 기운이 소금에 절인 듯

한 뼘 그늘 속으로 몸을 옮길 때

불 속에서 타오르는 사금파리의 눈빛

몇 이파리의 절망을 매단 나무들

희망에 떠나왔다 깨어져 버린 어금니에

절망의 빈터에 핀 꽃을 씹으며

마지막 보따리에 어둠을 싸는

공동묘지와 같은 空山의 쓸쓸함이란

남은 자의 위안이다, 버려진 것들

비석 같은 굴뚝 속으로

느릿느릿 저녁 연기 피어오르고

밤의 정적이 돌아오던 쓸쓸한 풍경마저

장중한 공동의 울림처럼 가슴을 때리고

무자릿길 하냥없이 길 또한 그지없고

그립다, 여름 사금파리의 눈빛

담벼락, 어딘가에 독사의 눈빛으로 타오르던

삶이 뿌리고 간 지린내 같은 것!

 

 

*시집, 타박타박. 새미

 

 

 

 

 

 

흑과 백 - 김이하

-탄광묘지 14

 

 

벼랑 끝으로 가 보았나

헛헛하게 비어 버린 아랫배와도 같이

거기 무엇을 채우든

다 채울 수 없는 허기가

입을 벌리고 있는 허공

 

그 징그런 적막을 보았나

간간이 칼금을 넣을 듯 달려드는 바람끝

거기에 영혼을 베여 보았나

곡괭이로 찍힌 발등에 떨어지던 불같은,

영혼의 아픔을 느꼈나

 

그곳이 끝이었던가

그곳이 절망의 끝자락이었던가

아니, 머리 젓고 다시 보네

아니, 눈물 뿌리고 하늘 뒤로 돌아 서네

높고 아득한 하늘

 

불콰한 봄볕 가슴을 헤집네

가슴에 박힌 쐐기 하나 녹아내리네

절망이 베인 자리 불꽃이 피고

온몸으로 불꽃이 되어 돌아오는 등 뒤로

기적 소리에 깨어난 산들

깊은 벼랑을 감추네

 

 

 

 

# 김이하 시인은 1959년 전북 진안 출생으로 1989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내 가슴에서 날아간 UFO>, <타박타박>, <춘정, 火>, <눈물에 금이 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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