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화 - 박후기
1
무너진 집안의 막내인 나는
가난한 어머니가
소파수술비만 구했어도
이 세상에 없는 아이
구석진 울타리 밑에서
흙을 먹으며 놀아도
키가 자라지 않아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2
엄마는 동생을 또 지웠다
여전히 나는 막내다
3
회를 앓는 내 얼굴은
자주 시들었다
태양을 벗어나기 위해
여름내 내가 기어간 길은
한뼘도 안되는 거리
4
내 키는 너무 작아서
바람의 손길도 닿지 않았지만
보름달 같은 엄마 엉덩이가
이마에 닿기도 했다
엄마는 아무 때나
울타리 밑에 쪼그리고 앉아
오줌을 누었다
죽은 동생들이
노란 오줌과 함께
쏟아져나왔다
*시집,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창비
보이저 2호 - 박후기
-어떤 사랑의 방식
다시 돌아가고 싶었지만
나는 너무 멀리 떠나와버렸다
해는 지지 않고 달은 너무 많아
모두 당신 얼굴인 양 여기며 살았다
언제나 밤길이었다
혼자였고,
밤하늘에 별들은 가득했지만
다가가기엔 모두 너무 멀었다
목성을 지나칠 때
나를 잡아끄는 중력을 사랑이라 믿으며
못 이기는 척 끌려가
당신을 잊은 채 살고 싶었다 그러나
까맣게 타버려 재가 된 나를
당신이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잘 살아야 해,
내가 어두운 달의 뒤편을 돌아나올 때
당신이 말했다 나는 가끔
태양계 저편에 전화를 걸었지만
당신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시인의 말
묵정밭의 해바라기가 종의 기원으로부터 몇번째 씨앗의 껍질을 깨고 나온 꽃인지, 몇번이나 고개 저으며 모진 바람을 부정했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얼마나 많은 씨앗의 악몽이 모여 해바라기의 표정을 만드는가.
그을음, 그것은 이 시집을 펼칠 때 누구나 보게 될 덧없는 내 자상(自傷)의 흔적이다.
가엾고 볼품없는 에고를 가슴에 품은 채, 도착지를 알 수 없는 밀항선에 다시 몸을 숨긴다. 나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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