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채송화 - 박후기

마루안 2018. 8. 7. 13:45



채송화 - 박후기



1


무너진 집안의 막내인 나는

가난한 어머니가

소파수술비만 구했어도

이 세상에 없는 아이

구석진 울타리 밑에서

흙을 먹으며 놀아도

키가 자라지 않아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2


엄마는 동생을 또 지웠다

여전히 나는 막내다



3


회를 앓는 내 얼굴은

자주 시들었다

태양을 벗어나기 위해

여름내 내가 기어간 길은

한뼘도 안되는 거리


4


내 키는 너무 작아서

바람의 손길도 닿지 않았지만

보름달 같은 엄마 엉덩이가

이마에 닿기도 했다

엄마는 아무 때나

울타리 밑에 쪼그리고 앉아

오줌을 누었다

죽은 동생들이

노란 오줌과 함께

쏟아져나왔다



*시집,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창비








보이저 2호 - 박후기

-어떤 사랑의 방식



다시 돌아가고 싶었지만

나는 너무 멀리 떠나와버렸다

해는 지지 않고 달은 너무 많아

모두 당신 얼굴인 양 여기며 살았다

언제나 밤길이었다


혼자였고,

밤하늘에 별들은 가득했지만 

다가가기엔 모두 너무 멀었다

목성을 지나칠 때

나를 잡아끄는 중력을 사랑이라 믿으며 

못 이기는 척 끌려가

당신을 잊은 채 살고 싶었다 그러나

까맣게 타버려 재가 된 나를 

당신이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잘 살아야 해,

내가 어두운 달의 뒤편을 돌아나올 때

당신이 말했다 나는 가끔

태양계 저편에 전화를 걸었지만

당신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시인의 말


묵정밭의 해바라기가 종의 기원으로부터 몇번째 씨앗의 껍질을 깨고 나온 꽃인지, 몇번이나 고개 저으며 모진 바람을 부정했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얼마나 많은 씨앗의 악몽이 모여 해바라기의 표정을 만드는가.


그을음, 그것은 이 시집을 펼칠 때 누구나 보게 될 덧없는 내 자상(自傷)의 흔적이다.


가엾고 볼품없는 에고를 가슴에 품은 채, 도착지를 알 수 없는 밀항선에 다시 몸을 숨긴다. 나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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