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치루 - 김승종

마루안 2018. 8. 7. 13:31

 

 

치루 - 김승종

 

 

게으르고 거칠었던 젊음이 가면서

괄약근에 길쭉하고 날카로운 대못 하나를 남겼다

몸안 깊은 곳에서부터

싸구려 술집 바닥의 지린내에 곰삭고

무허가 여인숙 늦은 아침 햇살에 담금질되어

쉴새없이 꾸준히 힘차게 자라난, 견실하고 육중한 대못을.

 

단 한군데 남아 있었지만

단 한번도 알지 못했던

항문 옆 연한 선홍색 주름살갗에

알아보려 해도 잘 알 수 없게

작고 작은 구멍이 막 뚫린다.

그 무엇도 되지 않았고

그 무엇도 될 수 있었던

유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단 한군데 그곳에

 

 

*시집, 머리가 또 가렵다, 시와시학사

 

 

 

 

 

 

미련 - 김승종

 

 

격렬한 노동에 지친 이빨이 쉬는 사이

짓이겨진 고기 찌꺼기

이빨 사이에 끼여 신경을 건드린다

부드럽고 미끈한 혀를 집어넣어

굴리고 달래고 얼러도

얌전하게 몸을 웅크리고 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어

이쑤시개로 이빨 사이를 후빈다

맑은 바람의 기운으로 크고, 영롱한 이슬을 머금어 다듬어진 美柳,

매끄랍고 윤기나고 양끝이 뾰족한 여의봉

발악을 하며 튕겨나오는 찌꺼지

 

이제 잘디잘게 부서진 찌꺼기의 찌꺼기는

더 그늘이 커지고 음습해지는 이빨 사이로 악착같이 틀어박힌다

찌꺼기를 꺼내기 위하여 이빨 사이로 드나들던 이쑤시개는

찌꺼기가 더 잘 끼게 이빨 사이를 넓혀 놓았다

혀도 소용없고 이쑤시개도 소용없네

나이를 먹을수록 먹기만 먹으면 끼이는 찌꺼기

 

에라, 썩어라, 썩자구나

 

 

 

 

*自序

 

'자기 앞의 생'을 열심히 열심히 살아왔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어느덧 삶의 후심부로 돌이킬 수 없게 내던져져서 별수없이 당황해 하고 있는 이들이나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저물녘 술자리의 안주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이 분다 - 주병율  (0) 2018.08.07
열흘 붉은 꽃 없다 - 이산하  (0) 2018.08.07
우리의 단련 - 백상웅  (0) 2018.08.07
운명 - 최정아  (0) 2018.08.07
탱자나무 여인숙 - 서규정  (0) 2018.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