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 최정아
열두 살 덧니 같은 산수유꽃 피네
구례 지나 산동 어디쯤
물안개 차오르는 아침
달력 속 눈발은 아직도 그치지 않고
관절통 앓던 아버지의 삽날이 건듯하네
봄 강물 풀리는 소리
살얼음 아래 흘러온 것이 강물뿐이겠느냐
갈아엎은 밭고랑도 봄볕을 베고 누웠는데
고단함을 치렁치렁 매달고
돌담길 돌아오는 늦은 저녁에
밥그릇엔 희망 한 조각이 불빛으로 얹히네
셀 수 없이 많은 꽃 모두가
열매가 되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것은
쇠기러기 날아가는 긴 겨울밤을 견뎌온 때문이지
온갖 입성으로 제 몸 감싸온 사람들
노란 춘곤증도 달게 웃음으로 지우네
해마다 둘둘 말린 강물 펼치며
휘파람 스쳐간 바람 끝 언저리에도
먹구름 일어선 자리에도
세살 돋는 산수유꽃을 피우네
봄은.
*시집, 밤에도 강물은 흐른다, 시선사
저승잠 - 최정아
오래된 배 한 척 갸르릉거린다
수심 깊은 곳에도 빙산은 있어
지나간 자리마다 물살이 인다
푸른 바다를 헤치는지
맥주거품처럼 부풀었다 사그라지는 숨소리
해당화꽃 냄새 방안 가득 눈물겹다
비바람 없어도 파묻힐 것 같은 밤
낙조가 깃든 얼굴 그지없이 평화롭지만
바닷물 들이켰다 뱉어내는 돌고래 떼도
힘겨울 땐 소리를 내는가
저승길로 한 발짝씩 다가서는
당신과 친구가 되어있다니
노을진 강이 그립고
갓 구워낸 바게트 따스함이 그립다
생의 중심이라 여겨온 것들 내려놓은 옆에
살며시 기둥 하나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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