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꿈이란 위로가 없었다면 - 정영

마루안 2018. 8. 2. 21:33



꿈이란 위로가 없었다면 - 정영



우리의 잠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개미들이 부지런히 먹이를 나르는 통로에서
서성인다


어떤 열매를 거두려
저토록 더듬이를 곤두세울까


다리 하나가 끊겨도 멈추지 않는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는 행렬
눈알이 하나 떨어져나가도 귀를 잃어도
괘념치 않지 새끼를 잃어도
멈출 줄 모르는 저 행렬 속엔
어떤 절규가 있는데
그것은 너무도 고요해서
아무도 깨뜨릴 수가 없어


그토록 바라던 거대한 바퀴에 짓눌리는 꿈을 꾼다
한데 무서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묻는다, 내가 버린 이 감정들을 누가 다시 주워 왔을까
그때에 우주의 침묵은 가혹하다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 계절이 오면
줄기를 타고 오르는 일에 익숙해질까
저 줄기처럼 보일 수 있을까
이내 내가 죽은 둥치처럼 보일 땐
단잠을 잘 수 있을까
꿈꿀 수 있을까


낮이면 별을 기다리고
밤이면 별을 바라보는 것 외엔
아무 할 일이 없는 그런 나무둥치 그런 꿈



*시집, 화류, 문학과지성사








집 밖의 삶 - 정영



하루치의 숙제들은 이미 무덤을 파고 누운 지 오래
그러니 할 일이 없는 자의 저녁은 얼마나 근사한가
집으로 오는 길에 꽃들은 제 몸을 던져 상여가 되어주었다
그러니 일찍이 잠을 청하는 이 생은 얼마나 평온한가


잠든 동안엔 약 봉투가 필요 없으니까!


나는 보았다
거리의 취한 사내들이 죽은 제 다리를 떼어내며 걸어가고
여인들은 침실에 앉아 그 다리를 주무르다 잠드는 것을


강변의 배 위에선 연인들이 누워 서로의
귀를 손가락을 목을 떼어주었다
빈 뼈를 두드리는 소리는 밤의 고요를 더 깊게 하였다


누군가 사라진 자리에선
풀이 자라는지 따뜻했다


배를 만드는 남자들이 럼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강은 제 어깨를 제 무릎을 제 눈동자를 제 몸의 가장 깊은 곳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눈을 감듯 눈이 감긴 듯


평온했고,
집 밖에서 창문 틈으로 들여다본 거실에선
어머니가 지우개로 내 얼굴을 박박 지우고 있었다


서로를 버려주는 이 아름다운 사랑!


잠을 거부하고 칭얼대는 저 나방들도
아침이면 세상의 모든 서랍에서 껍데기로 발견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