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더 나은 삶 - 류근

마루안 2018. 7. 31. 22:01



더 나은 삶 - 류근



내가 만약 지붕이 새지 않는 구름과 흔들리면서
멀리 가는 사랑 붙들지 못해 몸 버리면서
죽지 않은 사람 그리워하다 술집에서
돌아와 어떤 상처 때문에 울기도 하고
봄비의 나날이나 따스한 은둔을 향해 나아가는 여러 개의
영혼을 가졌더라도
삶에서 내 영혼을 가둔 집 오직 하나뿐이었다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이여


내 이 별에 오직 견디는 힘으로 살다 가려고 온 것 아니다



*시집, 상처적 체질, 문학과지성








그리운 우체국 - 류근



옛사랑 여기서 얼마나 먼지
술에 취하면 나는 문득 우체국 불빛이 그리워지고
선량한 등불에 기대어 엽서 한 장 쓰고 싶으다
내게로 왔던 모든 이별들 위에
깨끗한 우표 한 장 붙여주고 싶으다
지금은 내 오랜 신열의 손금 위에도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시절
낮은 지붕들 위로 별이 지나고
길에서 늙은 나무들은 우편배달부처럼
다시 못 만날 구름들을 향해 잎사귀를 흔든다
흔들릴 때 스스로를 흔드는 것들은
비로소 얼마나 따사로운 틈새를 만드는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이별이 너무 흔해서
살아갈수록 내 가슴엔 강물이 깊어지고
돌아가야 할 시간은 철길 건너 세상의 변방에서
안개의 입자들처럼 몸을 허문다 옛사랑
추억 쪽에서 불어오는 노래의 흐린 풍경들 사이로
취한 내 눈시울조차 무게를 허문다 아아,
이제 그리운 것들은 모두 해가 지는 곳 어디쯤에서
그리운 제 별자리를 매달아두었으리라
차마 입술을 떠나지 못한 이름 하나 눈물겨워서
술에 취하면 나는 다시 우체국 불빛이 그리워지고
거기 서럽지 않은 등불에 기대어
엽서 한 장  사소하게 쓰고 싶으다
내게로 왔던 모든 이별들 위에
깨끗한 안부 한 잎 부쳐주고 싶으다






# 우체국에 관한 유명한 시가 몇 개 있어서일까. 상투적인 소재 같으나 그래도 지나간 날이 그리울 때면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가 우체국이다. 요즘 누가 우체국에서 엽서를 부치냐고 할지 모르나 어쩌면 그런 사람이 없기에 이런 시가 더욱 값진 것이 아닐까. 여행지에서 잠시 우체국에 들러 엽서 한 장 부쳐 보자. 누구에게? 하긴 스마트폰 시대라 주소를 외우고 있는 친구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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