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염장 - 박철영

마루안 2018. 7. 30. 20:26

 

 

염장 - 박철영


듣기에 좋은 말은 아니다
느낌대로라면 속이 뒤집혀야 맞다
그렇지만 의외로 편하게 들린다
간만에 물어오는 안부에다
염장을 지르고 싶단 그 말
내 몸 어딘가에 붙어 있어야만 될
그것이 내 몸에서 빠져나갔다가
삶의 진득한 말과 버무려져
되돌아오는 것이라서 되려 반갑다

누군가 내 염장을 질러 주는 것
그것도 품앗이 같아
거저 해 주는 게 아니라는 것
자신의 허실을 찾아내
치고 들어오는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허물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나의 허물이 무엇인가 알고 싶어

누군가 염장을 질러 줄 것 같아
은근히 기다려 보지만
그런 사람 요즘 찾기 힘들다

 

*시집, 월선리의 달, 문학들

 

 

 

 

 

 

간짓대, 박철영


시골집 안마당에
맨살로 늘어선 빨랫줄을
받치고 서 있는 간짓대
팔월 한낮 더위에 힘도 좋다

푸른 기운 빠진 간짓대
언젠가 힘쓸 일을
죽순 때부터 알았던가
뿌리 끝 단전(丹田)을 끌어올려
마디마다 기력을
수천 번은 다져 넣었을 터

빨랫줄에 하얀 러닝셔츠도
마른 간짓대처럼
뜨거운 낮 동안 허리춤에다
바람을 빵빵히 채우고 있다

 

 

 

 

*시인의 말

 

시만 쫓아다니다

사람에게 해야 할 말들을

죄다 잃어버렸다

 

더 늦기 전

다시 말을 배우고

사람을 배우고

정말로 사람다워진 뒤

마지막 숨소리 같은

나의 시를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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