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 삶의 승부차기 - 김장호

마루안 2018. 7. 30. 19:26



내 삶의 승부차기 - 김장호
-전봇대 55



어느 날 동네에 없던 길이 생겨나더니
골포스트는 전봇대,
크로스바는 전깃줄로 만든
축구 골대가 길 양쪽에 세워졌다


길은 항상 문을 만든다
문은 항상 길을 만든다


아침이 코브라처럼 대가리 치켜들고 찾아와
골대 앞에 축구공을 갖다 놓는다


내 가슴속엔 길이라는 키커가 산다
실축하면 인생의 무게가 천근만근
공이 골대에 맞는 불운도 더러 있지만
망설임은 단칼에 베어버리고
행복을 꼭 차 넣어야 하는 내 삶의 키커


내 머리속엔 문이라는 골기퍼가 산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
키커와 눈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
골대가 골을 막아주는 행운도 없지 않지만
불행을 꼭 막아야 하는 내 삶의 골키퍼


어제는 키커로 신의 발이 되었고
오늘은 골키퍼로 신의 손이 되었다


내일은 아직 알 수 없는
내 삶의 승부차기



*시집, 전봇대, 한국문연








호두 두 알 - 김장호
-전봇대 36



손에 움켜쥐고 굴리면
와락 껴안고 살 부비는 소리


아내의 이갈이에 새벽잠 달아나고, 남으로 가는 완행열차 바퀴소리 애절한 창법으로 굴러가고, 어린것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보며 캐드득 웃어주고, 양은냄비의 허기진 소리 달그락대고, 옆집 장씨의 구둣발 소리 내 가슴 지르밟고 지나가고


후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호두 두 알
부럼 깨물 듯 깨부수고 싶지만
오늘처럼 내 발이 갈 길 몰라 난감해 할 때
손에 움켜쥐고 굴려본다


전봇대의 구인 전단지가 손짓하듯
전봇대 발등의 민들레꽃이 노랗게 웃듯,
전벗대에 기대앉은 할머니가 봄나물 다듬듯


손때 묻은 내 희망 두 알
와락 껴안고 살 부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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