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혼자 있게 하는 별 - 전성호

마루안 2018. 7. 24. 22:23

 

 

혼자 있게 하는 별 - 전성호

 

 

먼 산이 어둠 풀고 나와도

담뱃불 여전히 빨갛다

멀리서 까불거리는 저 새로운 발톱들

다리를 건널 때마다 가로막는

또 다른 발톱

바람은 지혈되지 않고

사랑도 끝내 용서하지 못하는 것

길 잃은 길, 바람이

귀를 막는다

내리막길 왜 뛰었느냐 묻지 말아라

막힌 길 벽 삼아

집을 짓는다 하얀 별빛처럼

까다롭게 발톱이 자란다

버릴 것이냐 더 얻을 것이냐

대답 없는 밤빛을 오징어 씹듯 씹는

 

 

*시집, 저녁 풍경이 말을 건네신다. 실천문학사

 

 

 

 

 

 

시간을 이겨내는 그림자 - 전성호
–부산 좌천4동 산 68-5번지


구겨져 흐르는 산동네
슬레이트 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세례를 받아야
빈 병 속의 꽁초들은 떠오른다
고물상의 소망도 그러한가
장맛비에  갇힌 근육의 우울
혼자된 벙어리
치매를 이기기 위해 숫자를 센다
종일 걸었던 걸음을 센다
셀 수 있는 모든 것,
그래도 같이 낡아가는 라디오
나이 찬 고양이가 곁에 앉아 말이 없다
찾아오는 것은 싫어하시면서도
선물 담았던 빈 박스들은
고물상에 넘기지 않는 함경도 손 씨 노인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 전성호 시인은 1951년 경남 양산 출생으로 동아대 경영학과,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을 졸업했다. 2001년 <시평>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캄캄한 날개를 위하여>, <저녁 풍경이 말을 건넨다>, <먼 곳으로부터 먼 곳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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