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비둘기호 - 김사인

마루안 2018. 7. 24. 22:33



비둘기호 - 김사인



여섯살이어야 하는 나는 불안해 식은땀이 흘렀지.
도꾸리는 덥고 목은 따갑고
이가 움직이는지 어깻죽지가 가려웠다.


검표원들이 오고 아버지는 우겼네.
그들이 화를 내자 아버지는 사정했네.
땟국 섞인 땀을 흘리며
언성이 높아질 때마다
나는 오줌이 찔끔 나왔네.
커다란 여섯살짜리를 사람들은 웃었네.


대전역 출찰구 옆에 벌세워졌네.
해는 저물어가고
기찻길 쪽에서 매운바람은 오고
억울한 일을 당한 얼굴로
아버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눈을 보냈네.
섧고 비참해 현기증이 다 났네.


아버지가 사무실로 불려간 뒤
아버지가 맞는 상상을 하며
찬 시멘트 벽에 기대어 나는 울었네.
발은 시리고 번화한 도회지 불빛이 더 차가웠네.


핼쑥해진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어두운 역사를 빠져나갔네.
밤길 오십리를 더 가야 했지.
아버지는 젊은 서른여덟 막내아들 나는 홑 아홉살


인생이 그런 것인 줄 그때는 몰랐네.
설 쇠고 올라오던 경부선 상행.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








금남여객 - 김사인

 


창틀에 먼지가 보얗던 금남여객
대흥동 버스 차부 제일 구석에나 미안한 듯 끼여 있던
회남행 금남여객
판암동 세천 지나 내탑 동면 오동 지나 몇번은 천장을 들이받고 엉덩이가 얼얼해야 그다음 법수 어부동
'대전 갔다 오시능규, 별고는 읎으시구유' 어쩌구 하는데 냅다 덜커덩거리는 바람에, 나까오리를 점잖게 들었다 놓아야 끝나는 인사 일습 마칠 수도 없던 금남여객, 그래도 굴하지 않고 소란통 지나고 나면 다시 '그래 그간 별고는 읎으시구유' 못 마친 인사 소리소리 질러 기어이 마저 하고 닳고 닳은 나까오리 들었다 놓던 금남여객
보자기에 꽁꽁 묶여 머리만 낸 암탉이 난감한 표정으로 눈을 굴리던 금남여객
하루 세 차례 오후 네시 반이 막차지만 다섯시 넘어 와도 잘하면 탈 수 있던 금남여객
장마철엔 강물 불어 얼씨구나 안 가고 겨울에는 길 미끄럽다 안 가던 금남여객
자취생 쌀자루 김치 단지 이러저리 처박던 금남여객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달리던 금남여객
쿠당탕 퉁탕 신작로 오십리 혀도 깨물고 반은 얼이 빠져 강변에 닿으면


색시처럼 고요하게 금강이 있지
사람은 차 타고 차는 배 타고 배는 다시 사람이 어여차 저어
강 건너에서 보면 그림같이 평화롭던 금남여객
벙어리 아다다처럼 조신하게 실려가던 금남여객
보얗게 흙먼지는 뒤집어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