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24시 편의점 - 김태완

마루안 2018. 7. 18. 22:41

 

 

24시 편의점 - 김태완

 

 

편의점 불빛이 유난히 밝다.

영업이 끝난 주변 상가의 내려진 셔터문이 피곤한 몸으로 누워

굶주린 야생고양이의 월담을 경계하는 동안

무심한 어둠은 눈을 감는다

허기진 도심의 조명이 밤을 품어내는 시각

구석진 곳에는 늘 분노의 흔적이 쌓이고

깨진 유리병이 누군가의 가슴을 찢었나보다

 

참을성 없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밝아올 내일을 무자비하게 씹다 내뱉은 흔적은

누군가의 귀가길에 한 번 더 밟힌다

편의점 불빛이 유난히 밝다

다행이다. 불빛이 있어서

홀로 어둠을 피해 나오는 젊은 여자가

편의점에 들러 공연히 음료 하나를 계산하고

문밖을 한참동안 바라본다

편의점 감시카메라가 붉은 눈으로 젊은 여자를 암기한다

 

멀리 고성이 오가는 소리가 멀어질수록

젊은 여자의 집은 가까울 것이다

매일매일 불야성 도심의 거리

말하지 않아도 위협이 되는

저 더럽고 흉악스런 어둠이 사는 곳

집으로 가는 젊고 예쁜 여자의 머릿속에

지나온 어둠의 뒤편이 쭈삣쭈삣 따라오고 있다

 

사람이 어둠이다

만만치 않은 어둠을 유영하는 24시 편의점은

야심한 도시와 타협했나보다

가끔은 무방비로 졸고 있는 미명의 고요다

 

 

*시집. 왼쪽 사람, 문학의전당

 

 

 

 

 

 

그 여름의 한 수 - 김태완

 

 

앞에서 보면 보이지 않던 수가

옆에서 보면 훤히 보이는구나

 

그늘에 모인 뙤약볕의 오후는 지친 시간을 끌어들이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에 신물 난 사람들이

부채질을 멈추고 한참동안 묘수를 찾고 있다

이러면 죽고 저러면 살고, 이러면 죽어도 세력이 살고

저러면 살아도 세력이 죽고

묘수를 찾아 떠도는 작은 바람이 나뭇잎에 앉아

천천히 형세판단을 기다리는 동안 삼라만상이 일장춘몽이라

이래도 살고, 저래도 살고

훈수하는 사람들 말은 못해도 치열하게 살고 있구나

 

앞에서 보면 보이지 않던 수가

옆에서 보면 훤히 보인다

 

집 안에 갇힌 돌

깊은 생각에 잠겨 더욱 달구어지는

그 여름의 한 수

 

 

 

 

*自序

마른 눈물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이 되고 싶었다.
시대가 상황을 만들고, 상황이 시대를 만드는 틈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후회와 좌절과 실망을 다시 품을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중심을 잡고 사는 일은 참 어렵고도 힘겨운 싸움이다.
중심에 대한 이해는 그것이 꼭 어느 양쪽의 가운데라는

관념의 탈피가 선행되어야 했다.
다만, 중심은 정확히 지정된 위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그 중심을 향해 걸음을 띄는 행위로 치자면
중심에 대한 난처한 답변이 될까.
사는 일은 내가 나 자신과 싸우는 과정 안에 포괄적으로 함축되고
날씨가 화창하고 맑은 날에도

나의 눈에는 언제나 혼탁하고 뿌연 상태로 사물은 다가왔다.

내가 염세주의적인 것은 결코 아닌데 말이다.
그 중심에서 나는 사람을 생각했고,
세상에서 가장 쉬운 언어로 그 사람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잘 들리지 않을 거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내 고집도 어지간하여,
이렇게 사람을 향해 쉰 목소리를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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